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

현대 세계에서 한국처럼 대규모의 언어혁명을 겪는 나라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말을 보듬고 우리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핵심역량을 잃고 문명쇠퇴를 자초할 것이다.

우리의 언어혁명이 얼마나 세찬지 가늠해 보려면, 중학생에게 기미독립선언서를 읽혀보라. 거의 모두가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로 시작하는 기미독립선언서의 첫 줄도 못 읽을 것이다. 우리가 읽어주면 알아들을까?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하고 읽는 순간 곧바로 "'오등은'이 뭐예요, '자에'가 뭐예요, '아 조선의'가 뭐예요" 하고 물어올 것이다.

90년이나 된 문건이라서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된다면, 200년이 넘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살펴보라. 우리의 짧은 영어로도 어렵잖게 읽힌다.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도 독립선언서를 읽는다. 훨씬 오래된 문건인데도, 낱말과 문체가 별로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거센 언어혁명 과정에 있다. 일상어에서 한자어가 빠르게 퇴조하고 서구어가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다. 한자어의 퇴조는 시각언어인 글이 그동안 한글 위주로 돼 왔고, 청각언어인 말이 일상적인 의사소통의 대부분을 차지해 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편, 한자어의 퇴조와 함께 우리는 놀라울 정도의 서구어 유입을 경험하고 있다. 서구어의 유입은 머지않아 우리말을 삼켜버릴 기세다. 마치 고려시대에 한문 과거시험이 도입되자마자, 파도처럼 밀려드는 한자어에 못 이겨 수많은 우리 고유어가 희생되었듯이 말이다. 그때 우리는 '내일(來日)'이라는 중요한 우리말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그제, 어제, 오늘, 모레, 글피, 다 있는데 내일만 없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렇게 고유어가 위축되면 어릴 때 사고력을 키우기 어렵다. 아이들의 사고력은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배우는 고유어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고유어의 힘을 살펴보자.

여름만 되면 우리는 무더위에 시달린다. '무더위'라면 습기 많은 더위를 뜻하는 우리말이다. 그런데 왜 무더위가 습기 많은 더위를 뜻하는지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아도 거의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합쳐진 말이다. '물기 있는 더위'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본래 말인 '물더위'에서 'ㄹ'이 탈락되어 무더위가 되었다.

아이들한테 무더위를 이렇게 분석해주면, 어떤 아이는 습기 없이 그냥 뜨겁기만 한 더위를 나타내는 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런 더위를 요즈음 불볕더위라고 한다. 아마도 이 말이 더 진화되면 '불더위'로 짧아졌다가 마침내 '부더위'가 될 것이다. 무더위처럼 'ㄹ'이 탈락될 것이니까.

무더위를 '물+더위'로 갈라보는 힘이 분석력이다. 무더위에서 부더위를 생각해내는 힘이 추론력이다. 분석력과 추론력은 사고력의 양대 기둥이다.

고유어는 이렇게 어린아이의 사고력을 키워주는 요술창고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어 교육이 부실하면, 어린아이들의 사고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다. 스스로 분석하거나 추론하지 못하고, 낯선 낱말들을 무조건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선조들의 학문활동과 성과는 그들이 기울인 노력에 견주어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당시 낯익은 우리말로 손쉽게 사고력을 키우지 못하고, 낯선 한문을 배우면서 힘들여 사고력을 키웠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어릴수록 고유어 교육을 잘 받아야 하고, 언어혁명 시대일수록 고유어 발전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