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한 스님이 "불교탄압 중단하라!"는 혈서를 쓰고 할복자살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드물게 여러 종교가 사이 좋게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1204년) 삽화. 조선일보DB

세계역사에서 종교 간의 충돌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중세유럽 십자군전쟁이다. 십자군전쟁은 1096년부터 1270년까지 무려 200여 년 간 지속된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이슬람세력이 기독교인의 성지 순례를 방해하자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시작됐다.

일곱 번에 걸쳐 진행된 전쟁 가운데 본래의 목적을 달성한 것은 딱 한번 첫 번째 전쟁뿐이었다. 첫 번째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은 극렬하게 표출됐다. 1099년 한 기독교 역사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어떤 자들은 목이 잘렸고, 어떤 자들은 화염 속에서 타 죽었다. 이슬람 신전 내부에는 피가 무릎까지 찰 정도였다. 그토록 오랜 동안 불경이 저질러진 이 장소가 그들의 피로 얼룩진 것은 신의 정당한 심판이었다." ('새유럽의 역사')

십자군전쟁은 종교적 목적과 더불어 세속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전쟁이었다. 성지탈환을 외친 교황은 자신의 세력을 동쪽으로 넓히려는 야심이 있었고, 영주들은 새로운 토지를 얻으려는 욕망이 있었다. 상인들은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해 돈을 벌려고 했다. 십자군 전쟁은 이교도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욕망이 어우러져 끔찍한 폭력을 낳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이교도에 대한 폭력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고려시대에는 유교와 불교가 조화롭게 공존했기 때문에 상호 적대감은 거의 표출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후기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졌을 때 엄청난 박해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1866년 병인박해인데 프랑스 신부 9명과 수천의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했다.

천주교가 박해받은 이유는 제사를 거부하고 인간평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리학적인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경직된 조선사회는 이러한 차이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한편 편협한 종교적 신념 때문에 문화재에 대한 폭력이 발생한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2001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의 불교유적 파괴사례이다. 당시 탈레반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모든 불상을 파괴하라!"고 지시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1500년 전에 만들어진 불상들이 많이 있다. 2세기 경에 만들어진 세계최대 규모인 바미안 마애석불이 대표적이다. 이 석불은 높이가 54m에 이르는 거대한 석불로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중요한 예술품이다. 그런데 탈레반 정부는 다이너마이트로 불상을 폭파해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순식간에 파괴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런 가치관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해서는 상대와 대화를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생각도 옳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이런 점에서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의 태도는 우리의 모범이 된다. 그는 과거 가톨릭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갈릴레이 재판과 면죄부를 판매한 것,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서 이교도에게 행한 폭력에 대해 뒤늦은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으며,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자신의 종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종교갈등을 해결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최근 한 목사는 "스님들은 빨리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신념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종교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최근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비판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준이다. 자신의 입장이 올바르다는 가정 아래 상대방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잘못되어 있는 점"을 우선 바로잡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대방도 "누가 봐도 명백하게 올바른 점"을 문제 삼는다고 반대로 주장할 수 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이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점을 별 근거도 없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종교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극단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차이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이나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적대감과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인정하고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