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씨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다. 모든 사실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자살의 주원인이 인터넷공간을 주 무대로 확산된 사채 괴담과 무관하지 않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떻게 그만한 일로 목숨을 끊어!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라며 사람들은 최진실씨의 죽음을 책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 고통이 얼마나 컸기에 두 어린아이들을 남겨두고 목숨을 끊었을까"란 생각에 가슴이 저며 온다. 그 얼마나 처절한 고통이었기에.
대개의 루머에서 정확한 사실관계 내지 시시비비를 명백하게 밝히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안에는 사실과 허구, 검증이 힘든 주장들이 교묘하게 꿰어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일부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어도 전체 맥락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섣부른 판단이 심각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번 괴담의 경우 만에 하나 최진실씨가 사채를 돌린 게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될 일은 아닐 것이다. 설사 문제가 있었다 해도 당사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사사로운 삶을 루머로 퍼뜨리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진실씨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인터넷 악플러에 대한 처벌, 인터넷 실명제, 사이버 모욕죄 도입 등 인터넷 소통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책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사회에서 무책임한 인터넷 소통이 야기한 수많은 말썽들을 생각하면 이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나 처벌 중심의 논의에 앞서, 왜 유독 우리 사회에 이다지도 많은 괴담이 횡행하는지 그 원인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괴담은 결국 작은 개연성을 갖고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악플을 다는 비뚤어진 심성에서 출발한다. 특히 많은 경우 능력 있는 자 내지 가진 자를 '묻지마'식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질시감이 밑에 깔려 있다 할 것이다.
이런 비뚤어진 마음이 유독 심해진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지난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다. 그 시기에 우리 사회의 지도층, 그들이 보유한 부, 명예, 지위, 권위는 그 자체로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다. 대기업, 강남, 서울대, 조·중·동 등이 모두 타파되어야 할 권력이었다. 능력과 성실함으로 부, 지위, 명예를 얻은 이들에게까지 기득권층, 특권층, 수구 꼴통, 비윤리적 집단 같은 딱지가 붙여졌다. 그 결과 정당한 성취에 대한 인정과 존중, 권위 부여 등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삶의 도덕적 토대(fundamental)가 철저히 부정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비틀린 사회심리의 저류는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거대한 썩은 물처럼 고여 익명의 인터넷 공간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저변을 흐르며 독기를 뿜어 댄다.
이번 인터넷 괴담의 근원 역시 최진실씨가 지닌 자질, 명성, 부를 시기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익명의 장막 뒤에서 능력 있는 자,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을 번뜩이며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꿰어 저주스런 이야기가 구성되었을 것이다. 안재환씨의 죽음 및 원인이 된 사채, 안씨의 유해가 안치된 병원에 시급히 달려간 일, 비통해 하는 친구를 대신해 안씨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소문이 새끼줄로 꼬였다.
사회심리학자인 알포트(Allport)와 포스트맨(Postman)의 고전적 연구에 따르면 루머는 입에서 입을 거치며 단순화되는 동시에 핵심이 부각되며, 일상에 부합하는 얘기로 진화한다. '그럴듯한 얘기'가 빤한 거짓말보다 한층 무서운 법이다. 최진실씨 사채괴담의 경우도 한 사람의 창작이었다기보다는 비슷한 부류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을 키우는 과정에 가까웠을 것이다. 최진실씨가 극한의 절망감 속에 자살 충동을 이겨내지 못한 순간은 잔인한 집단살인과 같은 방식으로 이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