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사흘 앞둔 지난달 11일, 육군 25사단 신병(新兵)교육대. 5주간의 힘든 훈련이 끝났다. 이등병이 된 신병 200여명이 강당에 모였다. 인사과 부사관이 한 명씩 이름을 불러 근무할 부대를 알리는 시간.

육군 25사단 GOP(최전방소초)에서 18년째 근무 중인 기노열 상사가 지난달 병사들과 철책선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보권, GOP(최전방소초·小哨) 근무!"

순간 김보권(21) 이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외아들이면서 경기도 성남의 S대학 1학년 학생으로 편하게 지내왔던 그는 앞으로 2년간 DMZ(비무장지대)를 지켜야 한다. 눈앞 DMZ 내에 북한군 GP(감시초소)가 있을 것이다.

김 이병을 태운 버스는 덜컹거리며 DMZ를 향해 달렸다. 면사무소에서 DMZ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민간인 통제선을 지날 즈음, 김 이병은 얼굴을 떨구며 취재팀에게 고백했다.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취재팀은 지난달 9일부터 30일까지 서부전선을 지키는 육군 25사단의 GOP대대에서 21일간 생활했다. 김정일 와병설(臥病說) 이후 DMZ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북한군은 GP의 관측소 수(數)를 늘렸다. 군인이 머무는 막사도 새로 짓고 있었다. 전투모 대신 철모를 쓴 북한군의 모습도 보였다. 최근 수년 사이에 처음 관측된 일이다. 그들은 밤이면 타종(打鐘)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낮에는 옥수수를 재배했다. 식량난 때문이다. DMZ 안에 있는 옥수수 밭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DMZ (비무장지대) 건너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 경계병들이 앉거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 고 있다.

GOP에 묻은 청춘

DMZ 앞의 GOP대대 11중대 본부. 옥상엔 태극기와 UN기가 함께 펄럭였다. 행정보급관 기노열(37) 상사가 11일 밤 김 이병을 맞았다. 그는 김 이병에게 GOP 생활을 상세하게 설명한 뒤 본부에서 가장 가까운 소초에 배치했다. 추석 당일인 지난달 14일 새벽, 기 상사는 중대본부에서 부대원들의 추석 차례상 마련에 분주했다. 차례 물건을 전날 부대 인근 시장에서 구입한 그는, 오전 8시 근무를 마친 장병들을 불러 차례를 지냈다. 김 이병이 맨 앞줄에 섰다.

차례 후 기 상사는 소초로 다시 돌아가는 김 이병과 류신우 이병을 불러 세워 품에 안았다. "집에 못 간다고 섭섭해 마라. 우리는 육군에서도 2%만 근무할 수 있다는 GOP에 있다. 자긍심을 갖자." 기 상사는 천생 군인이다. 그는 경기도 파주의 해안철책선 바로 앞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 철책을 잡고 칭얼대면 군인들이 건빵을 줬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입대한 그는 18년째 대한민국 최전방을 지키고 있다.

지난달 20일, 노총각 기 상사가 경기도 일산으로 외박을 나왔다. 여자친구와 일산의 한 야외 자동차 극장으로 향했다. 그녀와의 만남은 항상 짧다. 외박 나온 그날 오후 9시쯤 그의 발걸음은 이미 DMZ로 향했다. "GOP근무를 하면서 사고로 부하를 잃은 적이 있습니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안됩니다. 여긴 비무장지대니까요."

군인은 천직(天職)

김창일(29) 대위는 11중대장이다. 행정보급관이 부대의 어머니라면 중대장은 아버지다. 김 대위의 낮과 밤은 남들과 정반대다. 야간 순찰은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아침에 잠들고 점심에 일어난다.

오후엔 수색대의 매복 신고를 받는다. 매복은 철책 통문(通門)을 열고 DMZ로 들어가 북한군을 감시하는 작전이다. 김 대위의 임무는 통문 관리다. 매일 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색대원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병사 뒤에서 통문을 잠그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새벽에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지난달 23일, 그는 한 달 만에 2박3일 휴가를 허락 받았다. 경기도 이천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가는 길. "어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병원에 모시고 갔다가 시장에도 들를 생각입니다." 그날 저녁 김 대위의 저녁상은 푸짐했다.

이튿날 새벽 6시. 부대에서 이천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불시에 걸린 통합상황조치 훈련이다. 휴가는 그 즉시 취소됐다. 부대 복귀를 서두르는 김 대위를 보면서 어머니 신초경(54)씨는 속삭였다. "너한테 항상 미안하구나."

훈련은 사고 없이 무사하게 마쳤다. 김 대위는 다시 DMZ를 지키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중대장은 말했다. "천직(天職)이란 하늘에서 직책을 내려줬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저는 군인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병(老兵)의 노래

김종화(53) 원사는 군수담당관이다. 최전방 근무만 32년 6개월째다. 1976년 25사단에 배치되고 열흘 만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맞았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유서를 썼다. 결혼은 1981년에 했다. 결혼식 직후 대간첩 작전에 투입됐다. 한 달 동안 아내는 멀리서 울리는 총소리에 가슴을 쳐야 했다.

김 원사도 내년엔 정년 퇴임이다. 그는 최근 사회적응 훈련을 받았다. 창업하는 방법, 재테크 비법은 낯설기만 하다. "이등병이 된 기분입니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며칠 뒤 민통선 밖의 한 부대에서 그를 만났다. 김 원사는 군수품을 트럭에 싣고 있었다. DMZ로 가는 차에서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군인은 자부심 하나로 사는 겁니다. 조국을 지킨다는 거, 멋지지 않습니까?"

지난달 30일, 다시 만난 김보권 이병은 철책근무 중이었다. DMZ가 여전히 두려운지 궁금했다. 그는 또박또박 대답했다. "소총도 들고 수류탄도 들고 근무를 섭니다. 저는 이제 군인입니다. 두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