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호텔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기념 특별 강연에서 남북 및 한미 관계에 관한 속내를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 급변 상황에 대비한 한미 합동 작전계획 5027과 5029를 거절하고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한 이유 등, 재임 중 한미 동맹의 불편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이런 정책들을 추진했던 이유들을 털어놨다.
이날 특강 등은 작년 10월 4일의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지난 2월 퇴임 이후 첫 상경 행사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에는 이해찬 한명숙 한덕수 전 총리 등 노무현 정부 시절 장·차관 및 청와대 출신,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정치권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장수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측에선 홍양호 통일부 차관이 대표로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 비판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가시 돋친 비판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10·4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지 않고, 그 결과 남북관계가 다시 막혀버렸다"며 "10·4 선언은 버림받은 선언"이라고 했다. 그는 "나무(공동선언)가 말라 비틀어졌지만, 아직 안 죽었다"고 했다.
또 현대건설 CEO(최고 경영자) 출신인 이 대통령을 겨냥해 "전임 사장이 계약(공동선언)하면 후임 사장이 이행할 줄 알았는데, 국가 CEO는 안 그래도 되는 줄 몰랐다"며 "회사가 그러면 부도난다"고 했다.
◆"북한 입장에서 역지사지해야"
노 전 대통령은 '평화'가 '통일'보다 우선하는 가치라는 입장을 밝힌 뒤, "평화 통일을 위해선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이념 공조를 강조하고, 북한을 굳이 주적이라 명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의 외교·안보 기조를 비난한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원고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며 "북한은 주한미군과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겠느냐"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미국 달러 위조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마카오 계좌를 동결한) BDA만 아니었더라면 정상회담이 2년 정도 빨리 열렸을 것"이라고 했다.
◆ 지난 일요일 대규모 골프… 월요일도 골프
노 전 대통령은 "국보법에 의하면 북한은 반국가 단체이며, 이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국보법은 이념적 대결주의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근거이며, 남북대화의 걸림돌"이라고 했다. 또 "'6·25 전쟁은 남침인가? 통일전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악의적인 이념 공세"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 원고가 너무 세다고 해서 빼자는 것은 다 뺐다"고 했지만, 북한 핵 보유를 역지사지로 보자는 부분을 제외하곤 거의 원고대로 읽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설 도중 "생각보다 세지 않죠?"라며 "말하기 쉽지 않은 얘기들을 정면으로 다뤄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경기도 양평TPC 골프장에서 모교인 부산상고 동문 200여 명이 참석한 골프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골프장은 부산상고 동문인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 소유이며, 문 회장은 200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측에 불법 대선자금을 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날 골프 모임은 200여 명이 4명씩 50여개 조로 나눠 오전부터 진행했다. 또 다음날인 29일에는 자신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소유한 충북 충주의 시그너스 골프장에서 강 회장과 라운딩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6일 이곳에서 열린 강 회장의 장남과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장녀의 결혼식 주례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