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겨울 서울 종로2가 뒷골목 학원가가 생각납니다. 중3 겨울방학 때 '기본수학의 정석'과 '고교기본영어'를 수강했습니다. 수학강사는 염불(念佛)처럼 공식을 외우게 했습니다. '말은 초뿔엔마일의 공차'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수열의 말항(末項) 구하는 것, 두 번째는 수열의 합(合) 구하는 공식입니다. 수학 정석의 저자이자 상산고를 최고의 자립형사립고로 만든 홍성대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떠오른 31년 전 기억입니다.

▶당시 학원은 그리 살벌하지 않았지요. 강의 도중 갑자기 가수 윤형주가 나타나 통기타 들고 자기가 작곡했다는 부라보콘 CM송을 들려준 적도 있지요. 윤씨가 그 강사에게 수학을 배운 인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춥고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때 고교생들은 진추하의 '원 섬머 나잇'이나 그룹 맨하탄스의 '키스 앤 세이 굿바이' 같은 팝송 정도는 즐길 줄 알았죠. 새벽에 등교했다가 밤 10시 넘어 초주검이 돼 돌아오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자꾸 옛 일이 생각납니다.

▶홍 이사장은 이름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지만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이번 만남을 성사시킬 때도 "자꾸 연예인이 되는 것 같다"며 몇 차례나 사양했습니다. 대화 도중에도 그는 "다른 곳에서 연락 온 데도 많은 데 조선일보와 하면…"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촬영을 할 때도 "이거 참 어렵네"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가 특종을 주겠다며 갑자기 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개가 왜 특종이냐'고 묻자 그가 말했습니다.

▶"내가 경기도 과천에서 개를 여러 마리 키워요. 순종 진돗개로요.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53호잖아요. 아주 몸가짐이 깨끗해요. 제가 이 개를 학생들에게 나눠줍니다." 개를 왜 나눠주느냐는 질문에 그는 "학생들 우등상 부상(副賞)이 옛날처럼 사전이나 옥편이어서…"라고 했습니다. 학생 사랑이 이 정도이더군요. 그는 개를 절대 돈 받고 팔지 않는 대신 자기가 정한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안 준다고 했습니다. 마당이 있고 직접 키울 사람, 개 안 때리고 예뻐해 줄 사람이라는 게 조건이죠.

▶그의 좌우명이 진기(盡己)라는데 취미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10번 넘게 본 영화가 '말죽거리잔혹사'입니다. 폭력과 광기의 세월이 그 영화만 보면 떠오릅니다. '빳따'를 휘두르던 선생님들 생각도 나고요. 그런데 이번 인터뷰가 끝난 뒤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는 건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교육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