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Sarkozy) 프랑스 대통령은 22일 미국의 '경제 심장'인 뉴욕에서 "금융위기의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며 강조했다. 유엔총회 연설차 뉴욕에 도착한 사르코지는 이날 미국과 프랑스의 재계 지도자들이 수여하는 '엘리 위젤(Elie Wiesel) 인도주의상'을 수상하면서, "오늘날 전세계 수백만 명이 자신들의 집과 저금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며 "누가 이 금융 재난에 책임이 있는가. 그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가벼운 저녁식사 비용으로 1인당 1500~7만5000달러를 내고 그를 보러 왔던 미 경제계 인사들은 그의 '훈계'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요즘 유럽의 목소리는 미 자본주의에 대한 '훈계' 정도가 아니다. 프랑스의 국책 경제 싱크탱크인 경제분석위원회(CEA)의 크리스천 드 부와슈(Boissieu)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미국이 1944년 브레튼 우즈 체제를 수립했듯이) 프랑스와 유럽연합(EU)이 '금융 브레튼 우즈'를 수립하는 안을 추진해야 한다"며 "할 일이 없어진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유럽이 국제 경제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내에선 자조(自嘲)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넷판은 21일 "미국이 프랑스 합중국(United States of France)이 됐다"며 "애덤 스미스(국부론을 쓴 자유주의 경제학자)를 신봉하던 미국이 금융기관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 등 일련의 조치를 통해, 공화당원들이 가장 경멸해 마지않던 프랑스보다도 더 우스꽝스러운(cartoonish) 국가가 됐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프랑스의 국유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초반과 현재의 미국을 비교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와 미테랑(Mitterrand) 전 대통령은 집권 이듬해인 1982년 고용창출과 임금인상을 동시에 달성하려고, 국가 경제의 거대한 부분을 국유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은행과 보험회사였다. 이후 프랑스 은행들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자금을 대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프랑스 은행들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고정금리로 주택 담보 대출을 해줬다. 따라서 미국에서처럼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고금리(高金利)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로 집을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국인들은 집값 폭락으로 모기지 금리가 오르자, 집이 압류되는 위기에 빠졌지만 프랑스는 모기지 위기에서 비교적 안전하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뒤늦게 '프랑스의 길'을 걷는 꼴이다. 프랑스는 1944년 르노 자동차를 국유화했고, 이후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하자 1996년 민영화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GM과 포드 자동차는 요즘 날만 새면, 연방정부에 250억달러에 달하는 긴급 대출을 해달라고 간청한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과의 경쟁에 필수적인 친(親)환경 자동차 개발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타임은 "만약 워싱턴이 몇 년 전에 좀 더 강화된 연비 기준을 도입했다면 오늘날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반(半)국유화해야 할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지난 7월, 대표적인 에너지 기업인 수에즈를 주요 발전·상수도 공기업인 GDF와 합병했다. 이탈리아의 에너지 기업 에넬의 수에즈에 대한 적대적 인수 시도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런 '국가 대표기업(national champion)'을 보호하는 정책은 미국 정부의 금융회사 보호에 적용됐다. 타임은 "주가 폭락에 직면한 존 맥(Mack) 모건스탠리 회장이 크리스토퍼 콕스(Cox)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매도(空賣渡)에 대해 불평하자, 미 정부가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미국을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던 개인주의와 경쟁 우선의 자본주의는 몇몇 자본가들로 인해 축소 포장돼 미 정부로 배달됐다"며 "미국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그동안 비웃음의 대상이던 서유럽의 반(半)사회주의 국가들과 다를 바 없어졌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