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213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41억원)에 낙찰된 9번 교향곡 악보 초고.

'10번 교향곡'은 스페인의 소설가 조셉 젤리네크가 악성(樂聖) 베토벤의 삶을 팩션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음악학 교수 다니엘은 베토벤이 10번 교향곡을 남겼으리라 믿고 은폐된 악보를 찾아 나선다. 본지 8월 30일자 보도

베토벤(Beethoven·1770~1827)의 공식적인 마지막 교향곡은 9번 '합창'이다. 그렇다면 베토벤의 미완성 교향곡 10번은 존재할까. 소설은 명쾌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 명료하지 않다.

베토벤이 사망 직전 쓴 편지에 "내 책상에 이미 스케치된 것이 있으니 그것들로 새 교향곡 하나, 혹은 서곡이나 협회가 좋아할 만한 다른 작품을 쓸 수 있도록 해주기"를 간청하는 구절이 있다. 1825년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포켓용 스케치북에도 교향곡 10번의 악상을 담은 스케치가 있다.

'10번 교향곡' 논쟁의 불씨를 마련한 주인공은 베토벤의 조수이자 제자로 유명한 안톤 신들러(Schindler ·1795~1864)다. 그가 쓴 스승의 전기는 수없이 번역되고 개정판을 거듭하면서 19세기 베토벤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베토벤이 타계한 뒤 스승의 집에서 중요한 자료들을 가져가 1845년 프로이센 왕에게 팔고 거액을 챙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신들러는 베토벤의 대화첩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대목을 조작하거나 위조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어쨌든 신들러는 1844년 베토벤이 사망 전 10번 교향곡을 위한 스케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베토벤의 동료이자 또 다른 조수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카를 홀츠(Holz)도 '미완성 10번 교향곡'에 대해 "베토벤이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고 부드러운 도입부에 이어 힘찬 알레그로로 이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악성 베토벤이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하면 10번 교향곡의 여부는 저명 인사의 '친자 확인 소송'처럼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0~80년대에 들어서야 학문적 수준에서 본격적 재조명이 이뤄졌다.

논쟁의 불씨를 되살린 학자는 베토벤 연구가이며 음악학자인 배리 쿠퍼(Cooper)다. 그는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 등을 바탕으로 "1824년 '합창'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인 1822년부터 교향곡 10번을 위한 구상에 들어갔고 사망하기 2년 전인 1825년 10월에 마지막 스케치를 남겼다"고 주장했다.

쿠퍼는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베토벤이 남긴 스케치에서 추려내서 5년간 재구성 작업 끝에 1988년 '10번 교향곡'의 1악장을 두 가지 버전으로 발표했다. 쿠퍼가 손댄 베토벤의 '미완성 10번 교향곡'은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각각 녹음했다.

반면 로버트 윈터스 같은 학자들은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완성한 뒤 실제 10번 교향곡에 착수했다고 해도, 연속성 있는 초고(草稿)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반박하고 있다.

서양 음악사에서 작곡가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은 적지 않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 모차르트의 '레퀴엠', 푸치니의 '투란도트', 알반 베르크의 '룰루' 등이 대표적이다. 모차르트와 푸치니의 작품은 제자들이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토벤 이후 서양 음악사에서 '9번 교향곡'은 일종의 징크스가 됐다. 슈베르트, 드보르자크, 말러, 브루크너 같은 작곡가들이 교향곡 9번을 넘기지 못하고 타계한 것이다.

말러의 경우에도 미완성 유고를 바탕으로 '10번 교향곡'을 완성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 10번은 크셰넥을 비롯해 데릴 쿡, 카펜터, 마제티 등 여러 작곡가들이 완성에 도전했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Rattle)은 말러 교향곡 10번의 완성본에 누구보다 애착을 지니고 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