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광주지검 정종화 검사가 동료 검사 9명과 함께 노란 수의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교도소 생활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장 불편했던 것으로 여러 사람이 쓰는 수용거실(감방) 한쪽에 있는 변기에서 용무를 봐야 하고, 변기 옆에 붙은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세수며 식기 닦기까지 해결해야 했던 일을 꼽았다. 바깥의 따스한 봄 햇살과 달리 수용거실이 놀랍게 싸늘하더라고도 했다.
▶죄수가 교도소에 입소할 때는 담배 같은 것을 들여오지 못하도록 항문 검사를 하는 게 관행이었다. 1980년대엔 죄수의 옷을 모두 벗긴 뒤 먼저 오리걸음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면 항문에서 비닐에 싼 담배가 빠져나온다는 것이다. 오리걸음을 통과해도 치욕스러운 항문 검사는 면제되지 않는다. 정 검사는 죄수가 모멸감을 못 이겨 자살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여름 징역은 형벌 중의 형벌"이라고 썼다. 수용거실이 워낙 좁아 모로 누워 자야 하는데 겨울엔 옆 사람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지만 여름엔 곁에 37.5도의 '열덩어리'가 있어 증오스럽다고 했다. 겨울엔 '원시적 우정'의 대상이던 옆 사람이 겨울엔 '부당한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재소자들은 출입문에 달린 배식구(配食口)를 통해 밥과 국을 받아 방 안에서 먹는다. 배식구가 바닥에서 45㎝ 높이에 뚫려 있어 밥을 받으려면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혀야 하기 때문에 '개밥'이라는 자조(自嘲)를 불렀다. 법무부가 비인간적인 배식구를 허리 높이인 80㎝로 올리고 크기도 넓히기로 했다. 배식구를 높이면 재소자가 팔을 뻗어 자물쇠를 건드릴지 모른다는 걱정은 자물쇠가 중앙통제식 디지털 잠금장치로 바뀌면서 해결됐다.
▶배식구 높이기는 1909년 사법권이 일제에 넘어간 지 100년 만에 일본식 감방 잔재를 없애는 작업의 하나다. 법무부는 머리를 짧게 깎는 규정을 없애고 형무소, 간수 같은 용어도 수용시설, 교도관으로 바꾸기로 했다. 스웨덴 교도소는 1인실이 많고 침대와 책상, 책꽂이, TV가 놓여 있다. 식당에 모여서 밥을 먹고 담배도 허용된다. 가족 면회 때도 감독자를 세우지 않는다. 우리 교도소 체제는 징벌에 치우쳐 있다. 그러나 혹독한 처우는 오히려 사회에 대한 적개심만 키운다. 인간적 교정행정을 세심하게 모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