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 박태환 선수가 안 한다 하니까 저한테 연락주신 거죠?"
추석 특집 섹션용 인터뷰 때문에 최근에 만난 최민호(28·유도)가 대뜸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이런! 정말, 정말, 정말 그건 아니었다. 부서 회의 시간에도,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최민호 선수가 '만나고 싶은 올림픽 남자 스타' 중엔 단연 1순위였다. "절대 아니다. 민호 선수 진짜 인기 많다"고 말했더니, 쭈뼛쭈뼛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인기가 뭐가 많아요. 전 말도 잘 몬하고 촌놈에. 누가 절 좋아한다고."
이쯤 되니 ‘겸손’이었다. 미니 홈피 싸이 월드 1촌 신청 대기자만 1만 5000여명. ‘북한 어린이’ ‘애기 민호’ ‘최 애기’ 등 각종 별명을 달고 다니며 특유의 귀여움과 천진함으로 수많은 팬을 모으고 있는 그가 아닌가. 게다가 ‘준비된 달변가’이기도 했다. 방송에 비칠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온몸으로 ‘개그 본능’을 발휘할 지는 몰랐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던 ‘불꽃 카리스마’는 어디다 두고 화면에선 다소 얼떨떨한 모습이었는데, 직접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말 한마디 터트리면 상대방은 그대로 녹다운. 경기장에서만 ‘한판승’을 거두는 줄 알았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말로 눕혀 버렸다.
◆유도영웅은 말 한마디 떼면 한판승
‘유도 영웅’ 최민호.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주인공. 그는 이번 올림픽이 낳은 대표 스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5경기 모두 한판으로 시원스레 넘겨버리는 모습에 대한민국은 열광하고 또 열광했다. 8강전, 준결승 등에서 그렇게 무표정이다가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에서, “저 정말로 열심히 했거든요”라며 기자들 앞에서 서럽게 흐느끼는 모습에서 우리는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냥 눈물이 막 쏟아져 나오는데요,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의 눈물엔 훈련의 고달픔과 설움, 기쁨과 환희 모든 것이 섞어 있었다. 검지 손가락을 곧추 세우던 세레모니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 그거요. ‘하나님 보셨죠. 저 해냈어요. 저도 해낼 수 있거든요’ 뜻이었어요. 근데 동료들은 그거 보더니 ‘하늘에 분풀이냐. 웬 삿대질이냐’며 웃는 거 있죠.” 큭큭 거리며 이야기 했지만 그 동안 그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판패 안긴 파이셔와 대화는 딱 하나 ‘하하’
결승전에서 그의 손을 번쩍 들어주며 또 다른 ‘훈남’으로 급부상했던 은메달 리스트 루드비히 파이셔(오스트리아)와 그 뒤 만난 적 있는 지 물었다. 이미 자국 내 ‘유도 스타’였던 파이셔는 이번 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은1, 동2·공동 62위)에 유일한 은메달을 안긴 영웅. 대대적인 입국 환영식 행사에서 눈물 흘리던 사진은 국내 네티즌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뒤에요? 파이셔랑 선수촌에서 몇 번 마주쳤죠. 식당에서도 여러 번 보고요. 그 친구가 멀리서 저 보고 달려와 인사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서로 말이 안 통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말로 이야기 건넨 적도 있어요. 하하.” 국적은 달라도 그들은 그냥 웃음으로도, 눈빛으로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깊게 심어줬던 인상만큼이나 그를 보고 싶어하는 많은 팬들 때문에, 그에겐 각종 방송 섭외와 인터뷰 스케줄이 줄을 이었다. 입국한 날부터 스케줄은 ‘살인적’이었다. “와, 그거 진짜 힘들대요. 귀국 환영 행사 한 다음날 아침에 새벽 방송 있었거든요. 정말 밤 꼴딱 샜어요. 중국에서 짐도 안 도착해 옷이 한 벌도 없는 거에요. 그 새벽에 옷 사고, 이런 저런 준비해서 방송국으로 갔죠. 정말 방송하시는 분들 대단해요. 난 진짜 막 떨리고 그러던데. 방송 힘들어요~!”
◆“방송 힘들어도 직업이면 운동보다 훨씬 편해”
엄살인 듯 했다.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데, 여느 전문 방송인 못지 않았다. “저 못해요. 못해요”라고 수줍게 손사래 치다가도 시키는 건 다, 아니 응용까지 해서 더 잘하는 모습이었다. “방송 힘들긴 진짜 힘든데요. 그래도 그게 직업이면 진짜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 아, 훈련에 비하면 그렇다는 거에요. 근데 솔직히 제가 웃긴 건 아니잖아요~.” 그는 훈련만 떠올리면 아직도 온 몸이 저릿저릿하다. 그 고통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다.
중간중간 시간이 날 때는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다녔다. 그 사이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데이트 현장 포착’이란 제목이었다. “그거 그냥 후배 밥 사주러 나갔던 거였거든요. 진짜 아니에요. 소개팅 넘친다는 거 헛소문이에요. 진짜 하나도 없어요. 정말 여자친구 사귀고 싶은데, 여자 친구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는 최근 한달 만에 6㎏이 불었다. 체중조절 때문에 먹고 싶은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던 그는 메달을 따낸 뒤 진짜 “소원 풀었다”고 했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번 추석이 가장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도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진짜 금메달 만든 주인공은 엄마 “수면제 대신 책보내 나 재웠다”
“그 동안 훈련 때문에 한번도 추석을 즐겨본 적이 없거든요. 새벽에 혼자 김천 고향 집 뒷산을 뛰어다닌 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네요.” 눈만 뜨면 운동을 했다. 아테네 올림픽, 세계 선수권 등에서 연거푸 동메달에 그치며 ‘동메달 그랜드 슬램’이라는 냉소 섞인 꼬리표에 혼자 울던 그였다. “차례 지내러 가족들은 친척집에 가도 저는 집 근처에서 산을 탔어요. 계속 계속 높은 산을 찾아 다니며 또 달리고 달렸죠.”
최민호는 한 때 훈련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에 빠진 적도 있다.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 엄마에게 “약 좀 구해달라”고 SOS를 하기도 했다. 웬걸. 배달된 건 책 꾸러미와 한 통의 편지였다. ‘얘야. 약 먹으면 너 운동하는 데 안 좋을 수 있다더라. 넌 책만 읽으면 잠들지 않니. 이렇게 책을 보내니 잘 자길 바란다.’ 엄마의 그 ‘센스’ 덕인지, 그의 불면증은 금새 해소가 됐다.
“체급을 66㎏급으로 올려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도전한다고 들었다”고 말하자, 그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근데요, 그게 또 다시 부담이 되는 거에요. 이번에 이렇게 성원해 주셨는데, 그 기억을 갖고 계실 텐데요. 런던에서 잘 안 될까봐. 예상처럼 잘 못하면 또 원성 듣는 게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때문에요. 막 복잡해 지거든요. 그 지옥 같은 훈련만 생각해도 머리 아프고. 거기 또 다시 뛰어들어야 한다니 막 눈물이 나려 하는 거에요. 그래도 계속 응원해주시는 팬들 보면 진짜 이번에도 잘해야겠다는 생각 들어요. 그죠. 저 잘할 수 있겠죠?”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에, 이젠 좀 한숨 놓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는 또 다른 미래를 떠올리며 다시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다. 계속되는 방송 섭외와 인터뷰 요청, 갑작스런 인기, 연예계 진출에 대한 유혹 등에도 그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이렇게 뼛 속까지 깊이 새겨진 자신과의 투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이번 추석을 오랜만에 편하게 보낸 뒤 다시 훈련장을 향할 예정이다. “운동선수는 운동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잖아요.” 그가 또 한번 수줍게 웃었다. 햇살이 그의 얼굴에 부딪혔다. 그에게서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