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쪽 벽엔 꽃무늬 벽지로 포인트, TV가 걸린 벽은 아트월(장식벽), 안방은 앤티크 벽지, 아이방엔 띠벽지…. 최근 수년간의 아파트 인테리어 공식이다. 이랬던 아파트가 변하고 있다. '예쁜 집', '화려한 집' 대신 '집다운 집', '편안한 집'이 새로운 아파트 인테리어의 화두로 등장했다. '집에는 공허(空虛)를 즐기는 표시가 나타난다'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의 표현대로 아파트에도 여유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색깔 지운 벽, 변신하는 천장
그 사이 인테리어의 주력 공간은 벽이었다. 현란한 벽지와 아트월, 포인트월은 인테리어의 필수요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요즘은 무늬 없는 베이지나 흰색 계열의 벽지로 화려한 색깔을 배제한다. 대신 천장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지금까지 천장을 장식하는 유일한 수단은 조명이었다. 이젠 천장 자체가 바뀌고 있다. 일반적으로 거실 천장에서 조명을 다는 부분이 조금 패어있는데 이를 '우물 천장'이라 한다. 이 우물 천장을 넓게 만들어 천장을 높이는 게 최근 추세. 대개 아파트 천장 높이는 2m30㎝~2m40㎝인데 10㎝내외의 깊이인 우물 천장을 확장하기 때문에 높아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광(光)천장도 새로운 시도. 광천장이란 천장에 조명을 넣고 바리솔이라는 얇은 반투명 플라스틱으로 덮어 은은하게 조명을 비추는 방식이다. 디자이너 마영범씨가 제안한 광주오포 e-편한세상의 천장은 나무 패널을 이어 붙였다. 일부 가구는 이 패널에 경사가 져있기도 하다. 박공지붕(세모지붕)의 안온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한옥의 서까래를 연출하기 위한 고려다.
◆서까래 스타일 지붕, 미닫이문…, '한국식'을 심다
아파트는 서구에서 온 양식이지만 이제는 한국인 70%이상이 사는 한국 주거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한국적인 아파트'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게 사실.
이런 자성과 여백을 강조하는 최근 디자인 경향이 맞물려 '한국적 아파트' 만들기 붐이 불고 있다. 삼성물산 래미안은 '코리안 모던(Korean Modern)'을 인테리어 테마로 잡고, '소통'을 강조하는 우리 전통 주거 문화를 반영했다. 삼성물산 크리에이티브팀 조금령 선임디자이너는 "하이그로시로 만들었던 현관 붙박이를 나무로 마감하고 미닫이문을 쓰는 등 한옥의 정갈하고 담백한 느낌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얀 캔버스로 변한 모델하우스
모델하우스들은 화장을 걷어내고 '튀지 않는 고급스러움'을 지향하고 있다. 자연스레 입주자들이 살게 되는 실제 모습과 모델하우스와의 차이도 줄어들고 있다.
건설사의 슬로건에서부터 이런 분위기가 읽힌다. 대림산업은 '캔버스 인테리어'를 내세우고 있다. 건설사는 입주자가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 같은 공간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인테리어 주체를 '집'에서 '사람'으로 돌려준다는 의미"라고 했다. 현대건설은 '집다운 집' 되찾기를 표방하고 있다. 현대건설 인테리어팀 이현정 차장은 "집은 쇼룸이 아니라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데 주안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되면서 인테리어 거품 빼기가 시작됐고, 이로 인해 '비우는 디자인'이 각광 받는 것"이라고 했다.
◆공간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다
과거엔 안방·거실·주방 등 각 공간별로 뚜렷하게 인테리어에 차이를 뒀지만 요즘은 문틀 같은 프레임을 아예 없애는 등 집 전체를 하나의 매스(mass·덩어리)로 바라보고 있다. 소형평형대 아파트에서는 좁은 공간을 넓어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주기 위해 벽의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기도 한다.
장식이라는 '나무'보다는 공간이라는 '숲'을 보는 식의 인테리어가 주를 이루는 데는 외부 디자이너들의 영향이 크다. 1~2년 전부터 전시형(삼성물산), 마영범(대림산업), 최시영(금호건설), 김치호·김종호(현대건설) 등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이 아파트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장식'보다는 '공간'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