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첩 원정화(34)는 공판시작 10분 전인 10일 오전 10시20분 흰색 법무부 호송차를 타고 법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린 그는 옅은 녹색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310호 법정으로 이동했다. 160㎝가 채 안 되는 작은 체구. 긴 생머리를 뒤로 넘겨 한 가닥으로 묶었고, 촬영을 피하려는 듯 검은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 흘리며 범죄 사실 인정
원정화에 대한 첫 공판이 이날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렸다. 탈북자 출신 사업가로 알려졌던 그가 간첩으로 확인돼 외부에 모습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정에 나온 그는 피고인석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은 화장기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은 초췌하고 피곤해 보였다.
재판장인 수원지법 형사11부 신용석 부장판사가 신분을 확인하자 "원정화 1974년 1월 29일…"이라고 답했다.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작았고 말끝은 가늘게 떨렸다.
재판장이 "공소장을 받아 봤느냐. 공소사실이 맞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예"라고 말했다. 또 "공판에 앞서 전향서를 제출했는데 본인 의사에 따라 제출했느냐"고 묻자, 역시 "예"라고 했다.
◆"딸과 함께 살게 해달라" 전향서
원정화는 전날 수원지법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 성격의 전향서에서 자신을 '대역죄인'이라고 표현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했다. 수감 중인 수원구치소에서 자필로 작성한 2통의 전향서에서 그는 중국에서 임신해 한국에서 낳은 7살짜리 딸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모정(母情)을 내비쳤다.
그는 "북한에서 태어날 때부터 우상화와 주체사상만 배워 강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참고 견뎠고 공작원으로 파견 나왔을 때도 열심히 일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러나 "국정원(하나원으로 추정)에서 탈북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한국에 사는 동안, 북한체제가 잘못됐고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지, 이 대역죄인은 뒤늦게 알게 됐다"고 했다.
또 "평생을 죄스러운 마음으로 참회를 하면서 살겠다. 저에겐 7살 딸밖에 없다. 이 한 목숨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제 딸과 행복하게 살겠다"고 선처를 빌었다.
그는 두 번째 전향서에서 "장군님이 최고인 줄 알았다. 먹고 살겠다고 두만강, 압록강 목숨 걸고 중국으로 건너온 탈북자들을 무자비하게 잡아 보냈다. 당의 방침, 장군님의 방침이 하늘인 줄 알고, 조국에 돌아가면 명예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왔다"고도 했다.
그는 "지금은 다 밝히고 나니 속이 편하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새 세상 문이 활짝 열린 것 같다"면서 "이는 분단의 비극이고 제가 북한에서 태어난 죄"라고 했다. 전향서 끝에는 '대역죄인 원정화'라고 적혀 있었다.
◆원정화의 눈물
검사가 그의 행적과 범행을 입증하는 261가지의 증거물을 50분간 제시하는 동안 원정화는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포섭을 하려다 오히려 연정(戀情)을 느꼈던 황모 대위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진료 기록이 증거물로 제시됐을 땐 그의 몸에선 작은 경련이 일었다.
원정화에 의해 중국에서 납치됐다는 남한 사업가 가족들의 진술과 북한 보위부가 여성들을 대거 중국에 침투시켜 탈북자 검거에 나섰다는 자료, 군 부대 안보강연 과정에서 원정화를 만났던 군인들의 진술 등 증거가 검사에 의해 재판부에 제시됐다.
공판 말미에 재판장이 "경찰과 검찰에서 조사받은 것에 대해 조서를 읽어보고 확인 후 서명한 게 맞느냐"고 묻자, 원정화는 "맞습니다"라며 경찰과 검찰의 수사 내용을 인정했다.
이상훈 국선변호사도 "피고인이 공소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1시간 뒤 공판이 끝나자 원정화는 법정 경위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당초 국선변호사가 "증거서류를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며 재판 기일 변경을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판을 진행했다. 원정화에 대한 다음 공판은 10월 1일 열린다.
◆일본 방송사들 위성중계차 동원
법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검문 검색을 강화했으며, 법정 바로 밖에서 재차 신분 확인을 하고 몸 검색을 실시한 후에 방청객을 입장시켰다. 원정화를 호송했던 법무부 교도관들은 소총을 들고 경비를 했다.
이날 국내외 기자 60여명이 취재 경쟁을 벌였고, 후지·아사히 등 일본 방송사들은 위성중계(SNG) 차량들을 동원하기도 했다. 한 일본 언론사 기자는 "북한 관련 사안인데다 피고인의 일본 내 행적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