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5월 한 대학생이 부모를 망치로 살해해 토막난 사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인근 하천변에 버린 사건, 2004년 20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2006년 부녀자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중태에 빠트린 '정남규' 연쇄살인사건 등, 우리나라에서도 '사이코패스(Psych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에 의한 잔혹범죄가 반복되고 있다. 사이코패스는 연쇄 살인이나 강도·강간 등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하는 잔혹행위를 벌이면서도 죄책감과 상식적인 도덕심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범행 후엔 자신이 오히려 사회의 피해자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선진 외국의 경우 이미 사이코패스는 잘 알려져 있어, 기업 내에서의 사이코패스 범죄 예방·대처법이라든지 사이코패스 성범죄자 처벌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리 대책을 세워놓고 있다. 미국은 연쇄살인범의 90%, 폭력사범의 50%가 '사이코패스'이며, 이들의 출소 후 재범률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도, 대처법이나 관리법도 알려져 있지 않다. 사이코패스 진단 방식도 서구 실정에 맞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 다만 범죄심리학자들이 한 구금(拘禁)시설의 재소자 400여명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통한 '반사회성 인격장애검사'를 한 결과, 15% 가량이 사이코패스로 진단돼, 적지 않은 사이코패스가 우리 사회에 잠복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코패스는 겉은 정상인과 전혀 다르지 않으면서도, 태연히 엽기적인 범죄를 그것도 계획적으로 교활하게 저지르는 성향을 보이고,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고도의 재범 위험군에 속해 극히 위험하다. 지난 3일 막이 오른 서울충무로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영화 '매드 디텍티브'에서, 7개의 인격을 달고 다니며 범죄를 저지르는 치와이 형사처럼, 사이코패스가 직장이나 조직 속에 자리잡으면 잔악한 범죄행위도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기 쉽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양복 입은 뱀'이라고 불리는 이들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쳐 피해를 당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들이다.
사이코패스는 비교적 근래까지 치료가 불가능하고 단지 관리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지역치료센터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RTCSOTP)에 따른 실험결과는, 집단요법 및 개인요법을 병행한 치료를 통해 사이코패스 성범죄자의 50% 이상에서 재범률을 낮출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치료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파편화될수록 사이코패스가 활개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된다. 사이코패스의 위험으로부터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에 대한 미국의 RTCSOTP 같은 치료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조기 발견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범죄현장에 범죄심리분석가·심리상담사를 신속히 투입해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범죄 정보의 축적과 전문성을 배양하고, 보호관찰 제도와 연계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