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물공장 기술자들은 단단한 철근을 구부려서 석고 거푸집을 칭칭 두른다. 거푸집을 깨면 철근에 옹이 같은 용접 자국이 남는다. 수백 번 쓰여서 울퉁불퉁해진 데다 녹까지 슬면 철근은 고물로 넘어간다.

조각가 정현(52)씨는 바로 그 폐철근에서 "한 평생을 잘 견뎌낸 아름다움"을 봤다. 그는 폐철근을 수직으로 세워 조각품을 만들고, 새로운 생명을 줬다.

3일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정씨의 개인전이 개막했다. 그의 손길을 거쳐 직립한 폐철근은 흡사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내 이름은 폐철근. 고단해도 열심히 살았고, 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내 길을 갔다."

이 독백은 정씨 자신에게도 해당될지 모른다. 그는 1992년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조각을 고수했다. 설치미술과 개념미술이 떠오르고 "조각은 한 물 갔다" "안 팔린다"는 소리가 들려도 좌우 돌아보지 않았다. 삽과 톱, 망치와 펜치, 드릴과 그라인더가 시렁마다 들어찬 고양시 덕은동 작업실에서 그는 "새로운 것이 곧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요" 했다.

정현씨의 조각〈무제〉. 철, 109×50×190cm, 2008년작

"해외에서 뜨는 조류를 포착해서 얼른 비슷한 걸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팝아트가 뜨면 팝아트, 미니멀이 날리면 미니멀. 그러면 예술이 '누가 먼저 베끼는가' 하는 정보 싸움이 돼요."

그는 "나도 작가니까 '내 얘기는 별로 회자가 안되네' 싶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그래도 어떤 작품을 보고 '어, 해외에서 비슷한 거 봤는데' 싶으면, 그것만으로 그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는 인천 숭의동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자랐다.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방 세 칸짜리 단독주택에서 안방은 부모님이, 나머지 두 칸은 9남매가 남녀로 나눠 한 칸씩 썼다. "밥상에 갈치가 올라오면 형제들끼리 다투는 대신, 다들 알아서 '내 몫은 이만큼이려니' 요량했어요. 큰 형님이 무서웠거든요."

초등학교가 파하면 그는 매일 다른 길로 집에 왔다. 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참기름 가게, 성냥공장, 양은그릇공장, 어묵공장을 기웃거렸다. 10대 시절엔 스케치북을 들고 쇠락해가는 중국인거리를 헤맸다.

그는 줄곧 추상미술과 민중미술 양쪽에 모두 거리를 뒀다.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선배들에게 "조각이 뭐냐"고 물으면 그들은 "술 100잔 마시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청년 정현은 "예술가는 끼가 넘치는 기인(奇人)"이라는 고정관념이 싫었다.

"저는 예술이 사회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변혁을 주장하는 것은 제게 맞지 않았어요. 예술 그 자체로서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정씨는 2001년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 개인전에서 철도 침목으로 인간의 형상을 띤 조각을 선보였다. 침목은 쇄석을 등에 깐 채 수십 년간 땅에 누워 철로를 지탱한다. 그것을 도끼로 내려치고 톱으로 썰어서 만든 거친 형상이 관람객을 압도했다.

정씨는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였다. 지난해 미술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본지 조사에서는 '100년 후에도 잊히지 않을 작가'로 꼽혔다. 그는 "예술에서 개성이 나오려면, 자기 속에 있는 걸 끈질기게 끌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인고(忍苦)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더 깊고 풍부하게 보여준다. 전시는 25일까지. (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