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사이에서 ‘소개팅 펀드’로 불리는 직장인 김영훈(34)씨. “소개팅에 들인 돈에 비해 결과가 형편없다”며 “요즘 죽 쑤고 있는 펀드랑 똑같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 그의 소개팅 전적은 백전백패. 김씨는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는 나를 피하려 하고 나 좋다는 여자는 내가 싫다”며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울상이다.
결국 그는 주변의 권유에 따라 지난달 결혼정보회사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김씨는 “올해는 손자를 꼭 보고 싶다던 어머니의 소망이 ‘추석 때는 제발 여자친구라도 데리고 오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면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이번 추석 때는 기필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자친구를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 전에는 고향에 데려갈 배우자감을 찾기 위해, 추석이 지난 후에는 부모님께 느낀 결혼 압박 탓에 싱글들은 결혼정보회사의 문을 두드린다. 기존에 가입해있던 회원들 사이에서도 데이트 신청이 활발해진다. 명절 스트레스에서 구해줄 반쪽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커플매니저들은 “이맘때면 결혼할 마음이 없던 사람들도 동요하기 마련”이라면서 “추석 전후로 결혼정보회사는 대목”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혼정보회사 “등급표 실제로 있다… 매칭 위한 과학적 방법”
지방대·비정규직·홀아버지 20대女는 35점… 회원가입도 안돼
회사원 이모(여·26)씨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결혼 정보회사 등급표’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은행에 근무하는 이씨. 택시운전을 하는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탓에 빨리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런데 본인의 직업, 학벌, 외모뿐 아니라 부모의 재력까지 포함해 점수를 매겨 보니 고작 35점. 100점 만점에 65점 이하면 회원 가입이 불가능하다는 멘트를 보자 좌절감이 밀려왔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을 떠돌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등급표’. 실제로 존재할까? 익명을 요구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등급표가 공공연히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 “수많은 회원들의 정보를 모으고 관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등급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람을 등급에 나눠서 평가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등급대로 나눠서 회원들을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선호하는 상대를 찾아 매칭(matching)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일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배우자로서 개인이 차지하는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배우자지수’를 분석한다”고 밝혔다. 배우자지수는 사회·경제적 정보, 신체매력 정보, 가정환경 정보를 종합한 평가다. 우선 사회·경제적 정보에는 본인의 직업·학력·소득, 신체매력 정보에는 신장·체중·외모가 입력된다. 가정환경 정보에는 부모의 학력·직업, 형제의 학력, 양친생존여부가 포함된다.
이처럼 남녀가 모두 똑같은 사항을 기입하지만 가중치는 다르다. 남성은 사회경제 조건 > 신체매력 조건 > 가정환경 조건 순으로, 여성은 신체매력 조건 > 사회경제 조건 > 가정환경 조건 순으로 높게 평가한다. 남성은 같은 조건이라도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배우자감으로 인기가 높고, 여성은 외모가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미혼남녀가 꼽는 1등 배우자감은 “공무원·공사 직원”
男 “어리고 예뻐야”, 女 “모든 조건이 나보다 나아야”
그렇다면 미혼남녀가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세 이상의 미혼남녀 1462명(남성 635명, 여성 827명)에게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남녀 모두 ‘공무원·공사 직원’을 1등 배우자감으로 꼽았다. 선호도 5위 안에 든 나머지 직업 역시 교사, 금융직, 의사, 법조인 등으로 남녀 모두 배우자의 급여수준이 높거나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즘 부부에게 “맞벌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은 사실일까? 이 조사에서는 남성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맞벌이를 원하고, 여성은 절반 정도만 결혼 후에도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맞벌이를 했을 때 남성들이 원하는 배우자의 연봉은 평균 3000만원이 넘었다.
여성의 경우 배우자의 연봉으로 5000만원 정도를 희망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홍보팀 관계자는 “배우자의 희망연봉과 선호직종을 통해 싱글들의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면서 “특히 배우자가 소득이 높으면서도 개인적인 여유시간이 충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A결혼정보회사의 한 커플매니저는 “고객들에게 어떤 배우자를 만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남성들은 대부분 ‘어리고 예쁜 사람’, 여성들은 ‘모든 조건이 나보다 조금씩 나은 사람’을 원한다”면서 “여전히 여성은 외모, 남성은 능력이라는 공식이 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예전에는 무조건 의사나 변호사를 선호하는 여성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운동선수 박태환이나 개그맨 유재석을 이상형으로 꼽는 사람도 늘었다”면서 “돈을 잘 벌면서도 같이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배우자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혼인 경우엔 아이 없고 성격 잘 맞는 사람이 1순위
전문직·CEO 남성은 "맞벌이 싫다…양갓집 규수 스타일로"
D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 현소영(여·42)씨는 최근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저희 혼인신고 했습니다. 축하해주세요." 만난 지 불과 9일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고객의 전화였다. 현씨는 "몇 달 전에는 만난 지 12일 만에 혼인신고를 한 커플이 있었다"면서 "이들 모두 재혼이기에 빠른 결정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씨는 “나이가 비슷한 경우 만혼(晩婚)보다 재혼이 훨씬 쉽게 성사된다”면서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 때문인지 ‘이 사람이다’ 싶으면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혼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돌아온 싱글’도 늘어나고 있다. 이혼한 남녀를 가리키는 ‘돌아온 싱글’.
최근에는 이혼을 여러 번 하는 사람을 두고 ‘마일리지 쌓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런 돌아온 싱글들이 기본적으로 따지는 조건은 아이가 있는지 여부다. 서로 아이가 없어야 새출발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게 지배적인 생각이다. 두 번째로 따지는 것은 성격. 대부분의 이혼사유가 성격차이인 탓에 돌아온 싱글일수록 ‘필(feel)’이 통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소위 노블레스 남성들은 여성의 직업을 거의 보지 않는다는 게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노블레스’의 기준은 회사마다 다르지만, 노블레스 전문 결혼정보회사인 N사는 남성의 경우 의사나 법조인과 같은 전문직이거나 중견기업의 대주주, 기업체 사장 등으로 가입을 제한한다.
반면 여성 가입자는 장·차관급 자녀, 음대·미대 재학생, 미인대회 출신을 예로 들었다. N사의 한 커플매니저는 “노블레스 고객인 남성들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보다 얌전하게 살림하는 ‘양갓집 규수’ 스타일을 선호한다”면서 “맞벌이를 원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당연히 상대인 여성 고객을 모집할 때도 외모나 집안 배경을 중심으로 가입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장 골치 아픈 고객은 조건 많이 따지는 ‘골드미스’
결혼정보업체 “점수 높다고 빨리 성사되진 않는다”
이성의 조건을 가장 많이 따지는 사람은 누구일까? 경제적인 능력이 뒷받침되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요시 여기는 35세 이상의 미혼여성. 바로 ‘골드미스’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이들이지만 결혼정보회사에서는 가장 깐깐한 고객으로 통한다. 6년차 커플매니저 윤모(여·38)씨는 “요즘에는 원더걸스, 소녀시대 같은 10대 여성 가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무조건 어린 여성을 소개시켜 달라고 우기는 남성들이 많다”면서 “골드미스는 이런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나 정도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골드미스들은 자신의 조건보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어김없이 퇴짜를 놓는 것이 문제”라면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취미활동도 열심히 하는 멋진 여성이지만 대다수 남성들이 선호하는 배우자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조건만 따지다가 ‘실버미스’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결혼문화연구소 김우근 연구원은 “결혼정보회사에서 회원을 구분하는 등급은 직업, 나이, 출신학교 등을 나누는 기준일 뿐”이라면서 “등급이 높다고 결혼할 때 무조건 유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만남에 있어서는 성격이나 외모·분위기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 홍보팀의 정병길 팀장은 “듀오의 경우 가입할 때 160가지 세부사항을 조사한다”면서 “여기에는 가치관, 관심 분야, 생활습관 등을 묻는 다양한 항목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결혼정보회사가 제공하는 상대방의 프로필은 참고자료일 뿐”이라면서 “함께 살아가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스스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