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수영구 광안리 바닷가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삼익비치 수영장. 20여 년 전만 해도 부산에서 꽤 유명했던 이 수영장은 최근 몇 년째 휴장 중인 채 방치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이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등 국내 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해운대'(감독 윤제균)의 세트장으로 활용된다. 국내 최대 피서지인 해운대가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에 휩쓸린다는 내용으로 110억원을 투입, 제작하는 이 영화는 내년 여름 개봉될 예정이다.

부산지역에서 버려지거나 관심 밖의 공간들이 영화 속에서 재활용되면서 새 생명을 얻고 있다.

지난해 영도구 청학2동에서 동삼동 매립지로 이전한 부산 해사고등학교의 경우 아직 남아 있는 구(舊) 학교의 건물들이 영화 속 배경으로 인기가 많다. 지난 5~6월 '고死:피의 중간고사' 촬영 장소로 쓰였고, 지난해에는 곽경택 감독의 멜로영화 '사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부산지역 곳곳에서 영화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 부산 영도구 옛 해사고등학교에서 진행된 영화‘고死:피의 중간고사’촬영 장면.

부산영상위원회 김정현 홍보팀장은 "구 해사고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영화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공간으로 최근에 촬영 장소로 활용하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해사고는 이달 중에 스릴러물인 '마린보이'의 촬영 장소로도 이용된다.

영화 '괴물'을 만들었던 봉준호 감독은 소도시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문현동 주택가를 배경으로 10월 말 김혜자 주연의 '마더' 촬영에 들어간다. 현재 문현동 주택가의 공터에 세트를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2001년 문을 닫아 7년째 방치되고 있는 동래구 온천동 동물원도 지난해 가수 비가 출연했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배경이 됐고, 문현동 금융단지 일대, 을숙도 갈대밭 등도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됐다.

특히 70여 년 역사의 구포대교를 비롯해 지역 유명 업체였던 동래구 송월타월 공장, 동구 삼일극장, 부산진구 개성중학교 등은 지금은 철거됐지만 철거 직전에 각각 영화 촬영 장소로 이용되면서 영화 속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안창마을, 중앙동 인쇄골목, 보수동 책방거리, 동래별장 등도 영화 속에서 자리를 잡았다.

부산영상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영상위에서는 부산의 자연경관, 주거지역, 상업지역, 교육시설, 관공서 등 3000여 곳을 영화 촬영장소로 소개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최근까지 200여 편의 영화가 부산에서 촬영됐다.

경성대 연극영화학부 양영철 교수는 "영화 감독이 기록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영화로 촬영되는 순간 결국 기록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사라질 수 있는 지역의 건물이나 공간, 지금 현재 부산의 모습을 영화 속에 남긴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