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8개월의 파리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한다니 한국의 지인들, 파리에 있는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아이 걱정을 했다. "아이를 파리에 남겨두고 갈 거냐" "한국 가면 외국인 학교에 보내지 않을 거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작 열 살인 아이를 외국에 남겨두라고?" "왜 굳이 외국인 학교를?" 하고 반문했지만, 반복되는 질문에 슬그머니 걱정도 됐다. '그럴 만큼 한국 사회가 아이들에게 지옥이란 말인가?'
근 5년 만에 찾아온 서울은 고층 아파트가 더 들어서고, 버스 색깔도 달라져 낯설게 느껴졌다. 그보다 더 서먹한 건 대낮에도, 주말에도 분주하게 아파트 단지를 누비는 노란 봉고차들의 행렬이었다. 아이들을 태운 학원 차량이었다. 그새 사교육 열기는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출연 스케줄이 빡빡한 연예인처럼, 학교가 끝난 후 짜여진 학원 시간표대로 봉고차에 몸을 싣고, 또는 엄마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실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도대체 무얼 위해 아이들의 시간과 부모의 돈을 저리도 퍼붓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
사실 한국에 있다가 부모의 근무지를 따라 해외로 나온 한국 어린이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종종 '인생 역전'이 일어난다. 중학생 두 아들을 키우는 한 외교관은 "한국에서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원도 잘 다니고, 공부도 잘해 모범생 소리를 듣던 큰아들은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데 무척 애를 먹고, 외국 친구들한테 '너는 도대체 인생을 왜 사느냐'고 핀잔을 당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형보다 공부를 안 해 한국에서는 걱정거리였던 둘째 아들은 축구도, 노래도 곧잘 해 친구도 금방 사귀고, 외국어 말문도 더 빨리 트여 순조롭게 정착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인생 시(時)테크에서도 부모들의 생각과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그저 옆집 아이 이기는 경쟁에 만족한다면 대입에 모든 승부를 거는 '단기 투자'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20년 뒤, 30년 뒤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화 시대의 가늠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한다면 조급함 대신 기초를 튼튼히 하는 '장기 투자'가 적절할 듯하다.
한국이 중진국으로 도약하기까지는 그동안의 성공법이 통했을지 몰라도, 선진국 클럽의 문턱에서는 더 이상 먹혀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시간당 노동생산성(2006년 기준, 20.4달러)이 바닥에 가깝다. 조사대상 29개국 중에 26위. 프랑스(49.9달러)나 미국(50.4)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40%에 불과하다. 대신 1인당 노동시간이 제일 길다.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더 오래 일하는 대신,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창의적인 일을 하거나, 적은 시간을 들이고도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정복한 나라들의 시(時)테크를 배워야 할 때다.
그런데도 초등학생들까지 밤 11시, 12시에 잠재우고, 학원으로 밀어 넣는다. 프랑스나 독일 부모들은 아이들을 밤 8시, 9시 이전에 재운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뒤 축구하고, 테니스 치고, 땀 흘리며 오후를 보낸다. 방학 때는 부모와 신나게 놀고, 공부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한다. 그 나이에 놓치면 안 될 인생의 우선 순위를 잘 알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호기심'과 '건강한 체력'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가꾸어야 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어린 나이부터 학원 차에 실려 밤늦게까지 짜여진 인생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창의력 운운하며, 인생의 주인이 되길 기대하는 건 난센스다. 부모들의 막연한 불안감과 조급증을 다스리지 않는 한, 아이들 세대에서 행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겠다는 걱정이 4년8개월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든 첫 소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