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증오의 언어, 미움의 언어가 아니고선 시(詩)를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고 싶군요."
정희성(鄭喜成·63) 시인에게 시는 내면을 성찰하는 거울이라기보다 세상의 모순을 바라보는 창(窓)같은 것이었다.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고된 삶의 나락에 떨어져 신음하는 민초들의 질곡을 어루만져 왔다. 그러나 그의 시는, 시인 정끝별의 표현을 빌리면 "민중들의 삶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며, "하루가 저물듯, 고단한 노동이 저물어 연장을 씻듯, 노동의 비애와 슬픔도 함께 씻어낼 뿐"인 서정의 노동요(勞動謠)이다.
《시를 찾아서》(2001) 이후 7년 만에 신작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창비)을 낸 시인은 "나를 하나의 이미지 속에 가두기 싫었다"는 말로 자신의 시 세계가 더욱 확장되고 있음을 선언했다.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산업화 시대의 슬픈 그림자가 투영됐던 노동의 시편들은 이번 시집에서 지난해 교단에서 정년 퇴임한 시인 자신과 오롯이 만나는 자성과 수도의 몸짓으로 화학적 변화를 겪는다.
'평생 아이들 자라는 것만 보다가/ 퇴임하고 들어앉은 나에게/ 허구한 날 방구들만 지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아내가 불쑥 내민 호미 한 자루/ 하느님, 나는 손톱 밑에 흙을 묻혀본 적 없고/ 상추 한잎 이웃과 나눈 일이 없습니다/(…)/ 내 서툰 호미질이/ 어린 상추싹을 다치게 할까 걱정입니다'(〈작은 밭〉).
엄숙하던 시어들도 해학과 골계의 언어에 자리를 내줬다. 고교 국어 교사였던 시인은 '젓'과 '젖'의 말음법칙을 짓궂은 육담(肉談)에 써먹는다. '주일날 새우젓 사러 광천에 갔다가/ 미사 끝나고 신부님한테 인사를 하니/(…)/ 우리 성당 자매님들 젓 좀 팔아주라고/…/ 어느 자매님 젓이 제일 맛있냐고/ 신부님이 뒤통수를 긁으며/ 글쎄 내가 자매님들 젓을 다 먹어봤겠느냐고/(…)'(〈새우젓 사러 광천에 가서〉)
시인 자신조차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다.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게 다 시가 아니겠냐'는 말을 듣고 속이 불편해진 시인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혼자 말한다.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시인본색〉).
시인은 "나이 듦에 대한 상념을 웃음이 넘치는 시어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정년 이후 시인의 내면에 찾아 든 슬픔과의 대결로도 읽힌다. '길가의 코스모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가을날〉)거나, 쓸쓸한 심사를 달래러 정동진에 갔다가 '너보다 먼저 온 외로움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바닷가 벤치〉)며 슬픔을 드러내다가도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라며 삶의 에너지를 느끼기 위한 촉수를 내민다.
'아, 제발 그대가 내게 입맞춰주었으면!/(…)/ 스완의 목같이 늘씬한 그대 허리에 손을 얹고/ 건반에 뛰노는 손가락이 되어 그대를 연주할 수 있다면/(…)/ 벌거벗은 이 꿈 들키지 말았으면!'(아가·雅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