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해방 이후 베스트셀러 전시회를 열 당시 종로서적 내부. 조선일보DB

"고2 시절 드나들던 광주 대인동 헌책방은 세상 모든 꿈과 진리를 다 지니고 있는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서점은 인간의 영혼을 파는 가게다. 인간의 삶과 사랑과 예술에 대한 체취들이 깊게 고인 그 공간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다."(시인 곽재구)

"읍내 책방 가는 길은 문청(文靑) 시절의 나로 이어지는 길이다. 책방까지 천천히 자전거 체인을 돌리며 가는 시간, 그것은 꿈이 발효되는 시간이기도 하다."(시인 손택수)

작가들이 책방에 얽힌 애연한 기억들을 쏟아냈다. 격주간 도서잡지 〈기획회의〉는 도서정가제 특집의 하나로 문인들이 털어놓은 '오프라인 서점의 추억'을 담았다. 그들은 버젓한 레스토랑이나 미용실 등에 물려준 그 공간에서 애상에 젖기도 한다.

작가들은 가난한 시절의 동경을 토로한다. 시인 김용택은 "고백하지만 돈 생각하지 않고 책을 마음대로 사 보는 게 꿈이었다. 나의 책 사기는 늘 다급하고 늘 목마르고 늘 안타까웠다"고 적었다. 그는 "평생 외상 책값 다 못 갚고 죽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민세 아빠, 다 갚았어' 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얼싸안았다"고 회고했다.

청춘들의 약속장소이기도 했던 서울의 명소 종로서적이 글에 자주 등장한다. 시인 장석주는 "내 영혼이 숙성된 곳, 숨쉬는 것 말고는 미래에 대한 아무 계획도 없던 청년에게 정신적 부표가 된 장소, 미친 세상에서 내 유일한 은신처이자 망명지가 됐던 곳이었다"고 떠올렸다. 동화작가 이금이는 "종로서적 로고가 있는 포장지로 싼 책을 가슴에 안으면 비싼 옷을 입거나 멋진 가방을 든 것보다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표현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고향 김천에서 상경해 치른 대입 시험에서 수학을 잡친 뒤, '이제 뭘 하고 싶냐'는 아버지를 모시고 종로서적에 갔을 때의 감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종로서적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날 저녁 울음을 터뜨렸을지 모른다. 소설가가 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위로 받고 싶어 거기로 간 것이다."

작가들은 오프라인 서점의 묘미를 예찬한다. "고르는 재미, 그 구매 공간에서 맛보는 소비자끼리의 연대감, 눈요기의 즐거움, 시간의 소비…"(소설가 김종광) "정가를 다 치르고 내는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렇게 보석을 골라온 노고를 생각하면 웃돈이라도 얹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아동문학가 이경혜)

1997년 5170개였던 전국의 오프라인 서점은 10년 만에 37%(1923개)나 사라졌다.〈본지 8월 2일자 보도〉 이런 현실 앞에 선 작가들은 비장하다. 단골 문구사 한 켠에 놓였던 책들로 세상을 배웠다는 소설가 이경자는 "사람이 소통하되 그 모습을 볼 수 없고 숨결을 느낄 수 없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소통은 마침내 사람을 고독한 지옥에 익숙해지도록 만들 것이다"고 했다. 김용택은 "책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따뜻한 인연을 맺고 살던 그 눈물겹고 아름다운 시절이 우리에겐 있었다. 책 속에 파는 사람의 정과 혼이 흐르던 그 시절, 책은 책 이상의 인간관계를 맺어 줬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