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종(高在鍾) 시인의 시는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원하다. 농촌의 풍경과 자연 사물에 대한 친화적이고 예리한 시선,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삶의 진정성과 내면을 결합하는 시인의 고독한 시적 작업은 이미 그를 둘러싸고 있는 단아한 배경이면서 그가 여전히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모두 농촌에 있다"는 소박하고 진실한 그의 고백은 농촌에서 살아왔던 농민출신 시인으로서 그의 삶을 증언하는 방식이다. 또 그것이 곧 자신이 시를 쓰게 된 이유임을 내비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1959년 전남 담양군 수북면 궁산리 태생.
건강이 좋지 않아 농사를 그만두고 오래전부터 시 창작에만 전념한 그는 현재 계간 '문학들'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지역 문단의 활성화는 물론 후배 문인들에 대한 아낌없는 배려도 보여준다. 작지만 다부진 외모, 맺고 끊음이 분명한 성격, 그러면서도 '벌때추니' 소년처럼 유머와 위트를 겸비한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순수하고 올곧은 문학 정신과 서정의 풍경들을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리라.
부실한 건강 때문에 산에 다니다가 몽상을 하며 지었다고 한다. 위의 시는 "쪽빛 문장"(문학사상사, 2004)에 실린 작품으로 모두 15편의 연작 시편들이다. 이 시에서는 그 동안 시인이 응시하였던 농촌 풍경을 적나라하게 건져 올린 투명한 무늬들과 그 속에서 건강한 삶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겸손한 시선에서 한층 심화되어 자연 속에서 자아의 고독한 내면을 돌아보고 그 속에 스며들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유성호는 시집 해설에서 "생의 형식에 대한 적극적인 성찰과 탐구에 본령을 내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위의 오솔길 연작 시편은 농촌시적 범주와 생태시적 범주를 동시에 벗어난 변증을 꿈꾸는 공간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연두 초록이 물든 초여름, 오솔길을 걸으면서 몽상을 하던 화자는 '온몸으로 기며 온몸으로 대지를 읽는' 존재인 뱀의 화려한 등 무늬를 본다. 연두 초록의 전언이 궁금하여 휘파람새와 구슬붕이를 불러들이고, 자신의 문장이 초록 바람의 향기를 맡고 '골짝물의 쪽빛'을 얻기를 소망한다. 몽상에서 깬 화자는 철쭉밭으로 기어 들어가는 꽃뱀을 본다. 쪽빛 문장을 얻고 싶어하는 시인의 소망을 자연과 소통하여 은유적으로 이끌어내는 상상력은 꽃뱀의 화려함과 철쭉의 붉은 이미지가 결합되어 시적 화자의 건강한 생명력과 성찰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말처럼 '상처 없이는/생의 무늬를 찍'('무늬'-오솔길의 몽상8)을 수 없다. '지상의 눈물을 하늘의 별로 바꾸'('배접의 시'-오솔길의 몽상15)지 않고, '마음속 서러운 것을/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백련사 동백숲길에서'〈2002년 소월시문학상 수상작〉)와 상처의 길을 걸어 볼까 하는 다짐은 자연과 교류하면서 끊임없이 생의 원리를 탐구하는 시인의 진지한 사유를 들여다보게 한다. 시인은 오늘도 '싸리꽃 향기로 스쳐오'('말씀-오솔길의 몽상1')는 말씀을 들으며 오솔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어울림, 그 고즈넉한 풍경들을 끌어안은 채, 지난 날 시인이 노래했던 '흐린 세월의 늪 헤쳐/깨끗한 사랑 하나 닦아 세울/날랜 연인'('날랜 사랑')들을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