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자연을 관찰하며 찾아낸 규칙들이 바로 '물리'예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관된 규칙이 자연 속에 숨어 있다니 참 신기했어요."
서울 인헌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지범(18)군에게는 주변 모든 현상이 교재이자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물리학에 푹 빠져있기 때문. 친구들이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과목이지만, 최군은 세상에서 물리가 가장 재밌단다. 최근 물리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을 위해 '물리학의 산맥'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장난감 대신 자석과 현미경 가지고 놀게 해
초등학교 시절, 최군이 가장 좋아한 장난감은 게임기도, 모형자동차도 아닌 '자석'이었다. 자석을 가지고 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버지 최병갑(48)씨는 청계천 공구상가에서 자석을 종류별로 전부 사다 주며 흥미를 유도했다. 자석 놀이를 통해 과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자 확대경과 현미경도 사 줬다. 최씨는 "확대경으로는 확산적 사고를, 현미경으로는 미시적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며 "과학 기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적 사고력을 기르게 했다"고 말했다. 또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산과 들로 나가 자연을 느끼게 하고, 학원에 보내는 대신 책이나 신문, 시사 월간지를 많이 읽게 했다. 덕분에 특별한 사교육 없이도 초등학교 6학년 때 각종 과학경시 대회를 휩쓸었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서울시 동작교육청 영재교육원에 선발돼 교육을 받았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과학과 영어, 두 분야의 영재교육을 받았다.
과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최군의 방은 하루도 깨끗할 날이 없다. 수많은 책과 각종 실험기구들이 나뒹굴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아버지 최씨가 지하창고를 실험실로 만들어줬다. 제대로 된 과학 기구도 없는 작은 곳이지만, 최군은 책이나 논문에서 본 내용을 직접 실험해 보거나 머릿속에 떠오른 새로운 이론을 증명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연구 결과로 지난 2006년 'LG생활과학아이디어공모전'과 2007년 '한국과학창의력대회'에서 모두 최우수상인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문제풀이보다 독서와 실험 통해 과학 공부
최군은 과학과 수학만큼은 시험 위주로 공부하지 않는다. 고3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혼자 책을 보며 공부하기를 즐긴다. '블루백 시리즈'처럼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옛날 과학책들까지 죄다 찾아 읽느라 집 근처 헌책방들의 단골손님이 됐다.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는 대학 물리 교재도 자주 본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초의 3분',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등은 물리를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어 좋아하는 책이다. 혼자서 공부하다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영재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물리학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한양대 하자과학동아리 홈페이지에 질문을 올려 해결한다.
영어로 된 과학 잡지나 과학책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 실력도 좋아졌다.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지만 토익 성적이 930점을 넘고,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청소년과학캠프에 선발된 적도 있다. 영어 논문을 써서 해외 청소년 학술지에 투고하기도 한다.
공식도 무작정 외우지 않는다. 학자들이 공식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그 배경부터 차근차근 따라가 보면 복잡한 기호들로 이뤄진 공식 속에 담긴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최군은 "물리는 어려우면서도 깨닫는 즐거움이 가장 큰 과목"이라며 "공식이 자연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악하다 보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