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왼쪽)의 가출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 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엄마의 가출에 안방극장이 들썩거린다. KBS 2TV 주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4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중추인 62세 김한자(김혜자)가 '지난 세월의 희생을 보상해달라'며 집을 나가는 내용이 방송된 20일 시청률은 34.8%(TNS미디어 코리아). 한자의 본격적인 '원룸 생활'이 시작된 26~27일에도 반응은 여전히 뜨거웠다. 시청자들 반응은 엇갈린다. "한자의 자유를 향한 용기는 우리네 어머니들 마음"이라는 의견과 "너무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이 논란의 '창조자' 김수현 작가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엄마도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한자의 가출에 공감하는 주부들이 적잖다.

"50~60대 엄마들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삶의 피로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더욱 심했을 것이다. 김한자 또한 살다 보니 그 피로가 극심하게 몰려왔던 것이다. 당신네 엄마들 붙잡고 물어봐라. 아마 무작정 도망가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걸 난 본격적인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꿈꾸는 것과 실제 탈출하는 것은 다르다.

"맞다. 여건이 안 맞아서, 용기가 없어서 실제로는 힘들다. 그래서 일부 젊은 시청자들한테 내가 드라마를 통해 사회악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매도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김수현 드라마는 늘 '판타지'를 충격적으로 펼쳐낸다. 일련의 '불륜' 드라마를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줬던 '여성적 가치'의 표출이 이번 '홈 드라마'에서는 앞 뒤 가리지 않는 엄마의 가출로 대체된 셈. 김수현 드라마의 주 소비층 또한 '작가'와 함께 나이가 들면서 이런 '생활형 판타지'에 더욱 열렬하게 반응한다.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다시 시청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김수현 작가. 그는“많은 엄마들 이 남편, 자식, 시부모 때문에 자신을 버리고 살아간다”고 했다. 조선일보 DB

―정말 50~60대 주부들이 안식휴가를 가져야 하나?

"글쎄,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나? 안되니까 드라마를 보고 난리들 치는 거겠지. 우리나라 남자 중 몇 퍼센트가 아내, 며느리의 안식휴가를 용인해주겠나? 모두 '에고(이기적)'들이다."

―한자 정도면 나름대로 괜찮은 여건에서 살아가는 어머니 아닌가? 가출까지 생각할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시아버지 너그럽고 남편 착하고 아이들 멀쩡하게 컸고. 호강에 겨워 저런다는 말까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내가 못 견디겠으면 그만 아닌가? 객관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한자가 자식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같다는 비판론도 많다.

"자식들 입장에서는 이상한 엄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늘 지고지순하고 자기희생만 해야 하나? 그건 고정관념이다."

―드라마를 통해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보고 싶나?

"바뀔까?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엄마도 인간이다. 이 드라마가 힘들게 산 그 분들에게 보상, 대리만족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드라마를 보고 실제로 휴가를 떠나겠다는 주부들도 있다. 뿌듯한가?

"하하하. 휴가 가는 기분이 얼마나 좋겠나? 남자들은 치를 떨고 싫어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이거 내가 '가정파괴범'이 되는 거 아닌가? 난 정말 50~60대 어머니들이 단 일주일만이라도 혼자만의 휴가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아내들 나중에 큰 병 들게 하지 마시고, 중간 중간 숨구멍을 틔워달라고."

―극중 철 없는 '공주 마나님' 고은아(장미희)와 함께 사는 김진규(김용건)가 최근 집을 나갔다. 말하자면 아빠의 가출인데, 엄마의 가출과는 어떤 관계인가?

"좁게 보면 다른 얘기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한자와 진규의 가출은 통한다. 몇 십 년간 자신을 짓눌러왔던 억압을 털어버리는 해방의 과정이다."

―한자의 가출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젊은이들에게는 부모의 노고에 대해 너무 무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부모한테는 자식들에게 너무 모든 것을 걸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무언가 쌓이도록 살지 말자는 거다."

그는 소문난 '까칠한 성격'이다. 수십년 간 그의 드라마에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에 "알게 뭐냐?"고 답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그가 만들어낸 캐릭터 한자는 언제쯤 집에 들어올까? 그는 "남편이 극중에서 발을 다쳤지만 아직 한자가 들어올 상황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설마 1년을 꽉 채우게 되냐?"고 묻자 "그건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최소한 일회성 해프닝은 아니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