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좋은 놈'이 서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쪽 팔을 문에 기댄 채 눈꺼풀을 지긋이 올리며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정우성은 그렇게, '좋은 놈'이라기 보다는 '멋진 놈'에 가까운 자세로 서 있었다.
개봉 4일 만에 200만을 돌파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감독 김지운)에서 '좋은 놈' 박도원을 맡은 정우성은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브라운 롱코트 재킷에 스카프를 휘날리며 장총을 360도 돌리거나, 밧줄에 의지해 허공을 휘저으며 총을 쏘아 대는 동작의 유려함은 연기라기보다는 감탄사를 유발시키는 화보 촬영 모습 같다.
그는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고 말했지만, 그를 청춘 아이콘으로 각인시킨 '비트(1997·감독 김성수)' 이후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그려졌다는 평이 다수다. 그는 자신을 '스타일의 아이콘'으로 창조해낸 김지운 감독에 대해 '현명한 관찰자'라 표현했다. 배우의 개성을 적확하게 뽑아냈다는 설명이었다. 감독을 '현명한 관찰자'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는 우아하게 자신의 매력을 인정했다.
알려졌듯 영화 속 그는 '좋은 놈'이다. 하지만 영화만 봐서는 그가 왜 '좋은 놈'인지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시나리오에는 '독립군에 몸 담았었고, 조직과의 마찰 때문에 잠시 거리를 뒀다'는 식으로 적혀 있었지만 실제 촬영에선 배경 설명을 최대한 배제하고 찍었다고 했다. "관객들이 도원의 배경에 대해 설명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건, 도원이란 캐릭터에 대해 그만큼 많이 주목하기 때문이겠죠. 사실 이 세 명 중 도원이만큼 서로를 쫓는 데 명확한 이유(현상금)를 가진 사람도 없어요."
사실 영화는 제목처럼 '놈'들의 성격이 그렇게 단순하게 그려지진 않는다. 그는 '좋은 놈'은 '냉정한 놈'이고, '이상한 놈'에겐 '인간미'가 숨어있으며, '나쁜 놈'은 약간 '불쌍한 놈'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가 좋은 건 정체성에 모호함이 있다는 거죠. 인간이 원래 그렇잖아요. 욕망의 교집합. 명확한 듯 흐트러져 있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박도원이 아닌 정우성은 그럼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지만 그는 '어떤 놈'인지도, '지향하고 있는 놈'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했다. "현재의 나에 대해선 상대가 판단해야 할 문제겠죠. 전 지금 '미래의 그'를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는 거구요."
그의 말은 조금 더 이어졌다. "정우성은 왜 할리우드 못 가지? 연기 변신은 언제 하냐? 뭐 그런 말들이 많죠. 하지만 조급하진 않아요. 뭐 하는 데 좀 느리기도 하고요. 내 방식대로의 길을 따르는 거죠." 특유의 여유 속엔 자기애(愛)도 작용한 듯 보였다. 송강호의 유쾌함이 부럽지 않으냐는 말에 "나도 (썰렁한) '무인도 개그'로 강호 형 못지않게 촬영장에서 인기였다"라며 크게 웃는다.
그는 내년쯤 감독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감독에 대한 그의 꿈은 오래된 것이다. "영화 속에 형상화되는 인간의 이미지가 좋아요. 눈에 포착되지 않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감정의 미장센'이 매력적인 거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까. "외국에선 배우들이 감독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경쟁자에 대해 진심으로 애정과 존중을 보여주지 않죠. 틈만 나면 밟으려 해요. 제가 실패하더라도, 정우성이 발을 못 붙이게 되더라도, 누군가가 그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얻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실패란 없다고 생각해요."
한참을 에두르다 결국 그는 '멋진 놈'이 되고 싶다고 했다. 멋지다고 인정 받고 싶고, "그렇게 인정 받고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배우 정우성이 '인간' 정우성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솔직함은 때로 가장 빛나는 액세서리다. 그에게서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