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이른 아침부터 인천시 인하대병원 3층 건강검진센터엔 금발머리 파란 눈의 외국인 10여명으로 북적거렸다. 건강검진 복장과 가운을 입은 서로의 차림새가 신기한 듯 을 찍기도 했다. 이들은 3시간에 걸쳐 의사 상담, 안구검사, 각종 암 지표 혈액검사, 심전도, 복부 초음파, 유방촬영술, 위 내시경 시술을 받았다. 검사를 마친 이들은 병원이 마련한 전복죽을 먹었다.

이들은 미국에서 온 '의료관광객'들이다. 그간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는 성형수술 등의 수술을 받기 위해 단체 관광객이 오기도 하지만 미국 단체 관광객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5월 미국 LA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의료 설명회를 가진 후, 현지 여행사와 국내 병·의원이 2개월에 걸쳐 준비한 의료관광 상품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총 29명이 지난 22일 가족과 함께 인천공항에 입국한 뒤 판문점, 비무장지대(DMZ), 인천상륙작전 기념관 등을 둘러봤다. 이날은 건강검진과 피부과 진료를 '체험'하는 날이다.

요가 강사인 데니스 K. 스나이더(Snyder·여·49)씨는 "미국에서는 진료 분야별로 병·의원을 일일이 찾아 다니면서 진찰 받아야 하는데, 한 곳에서 한꺼번에 검진을 받으니 좋다"며 "미국에서는 검사 결과를 4주 후에나 알려주는데 여기서는 4일 만에 알려준다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번에 종합검진 비용으로 지불한 돈은 400달러(약 40만원). 이날 받은 검진을 미국에서 전부 받으면 최대 10배나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스나이더씨의 말이다.

24일 오전 인천 인하대병원에서 의료관광을 온 미국인 관광객들이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LA에서 영어 캠프 강사로 일하는 크리스티 너드센(Kristi Knudsen ·여·48)씨는 "한국의 진료 시스템이 생각보다 잘 돼 있다"며 "허리가 아픈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고 말했다.

인하대병원은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2년 전부터 아예 전담 도우미를 두고 의료진을 대상으로 영어 집중 교육을 시켰다. 만약에 일어날 의료사고에 대비해 다국적보험회사에 배상보험에도 가입했다.

신용운(소화기내과 교수) 검진센터소장은 "검사 결과는 이들이 출국하는 날 인천공항 안에 있는 인하대병원 의료센터에서 의사와 상담을 하면서 알려준다"고 말했다.

오전에 검진을 마친 의료관광단은 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했다. 오후 3시쯤 서울 강남역 사거리의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로비에 도착한 이들은 200달러를 내고 얼굴 피부에 크리스털 필링(피부 표피를 균일하게 벗겨내 피부를 탱탱 하게 하는 시술)을 받았다. 일부는 눈가 주름과 입 주변 팔(八)자 주름을 없애는 시술을 선택했다. 처진 양쪽 볼을 올리기 위해 실을 볼 안으로 넣어서 끌어올리는 이른바 '매직 리프팅(lifting)' 시술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개개인에 대한 신속한 진료가 가능한 것은 의료진이 미리 이메일로 의료관광객들의 얼굴 을 받아서 어떤 시술을 받으면 좋은지 알려주고 협의를 끝냈기 때문이다.

이상준 원장은 "우리나라 미용성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가격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톡스 치료 비용은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1.5~2배 비싸다. '매직 리프팅' 비용은 한국이 4000달러, 미국은 8000달러다.

의료관광단이 한국에 오기 위해 의료비를 제외하고 항공료, 호텔비 등 기본 경비로 낸 돈은 총 3300달러(약 330만원). 이밖에 의료비, 쇼핑비 등에 추가적으로 쓰는 돈은 1인당 약 3000달러이다. 여행경비를 합쳐도 미국에서 치료받는 비용보다 훨씬 싸다. 이들은 주말 경주 관광을 마친 후 출국할 예정이다.

이번 의료관광객을 유치한 L.A 아주관광 박평식 사장은 "의료관광객 한 명을 유치하면 자동차 한 대를 수출하는 효과를 낸다"며 "이달 말에 2차 미국 의료관광단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주관광은 앞으로 인공관절 수술 환자를 국내에 유치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무릎이나 엉덩이 관절 인공관절 수술 비용은 약 8만 달러(약 8000만원). 우리나라는 1만 달러(약 1000만원) 수준이다.

한국관광공사 정진수 전략상품개발팀장은 "국가 이미지 강화 차원에서 한국이 의료 강국이라는 사실을 널리 홍보해야 한다"면서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환자 유인·알선을 금지하는 의료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외국인 환자에 대해서는 알선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올해 정기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의료단체는 이를 계기로 국내 환자들을 상대로 한 알선 행위도 합법화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