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에 대해, 반미(反美) 성향에 북한에 일부 우호적이었던 단체들조차 북한의 태도를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등 종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1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북한의 사과 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승흡 대변인은 "남북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하는 책임은 북측에 있다. 북측은 남북한 합동조사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노당은 올해 초 당내에서 지금의 당 주류를 겨냥해 '북한을 추종한다'는 이른바 종북주의(從北主義) 논쟁이 벌어져, 일부 인사들이 당을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기도 했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소장 구갑우)와 평화네트워크(대표 정욱식)도 사건 직후인 지난 12일 즉각 성명을 내고 북한 당국의 사과를 요구했다. 군축센터는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것은 평화적인 관점에서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사건이며, 북한의 진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한 인터넷 기고문에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우리민족끼리'는 이제 그만"이라며 "사건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고 남측에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대단히 실망스러운 태도"라고 했다.
민노당이나 평화네트워크 등은 북한이 핵 실험을 했을 때 북한을 직접 비판하기보다는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웠고,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공개적 망신주기는 인권 개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을 펴왔다. 그랬던 민노당과 일부 단체들까지 이번 관광객 피살 사건을 놓고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무장군인에 의한 민간인 피격이란 사안의 심각성과 북한의 총격에 격앙돼 있는 국민정서 때문에 북한을 감싸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민노당 관계자는 "단순 실수였는지 북한이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 우리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이런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은 통일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만큼은 종전의 다른 사안들과 달리 전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때문에 이들의 북한 비판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나온 '전술적 후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진보연대 등 친북성향의 단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서도, 반미(反美) 구호를 자제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때와도 크게 달라진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번 시위는 반미(反美) 정서가 아니라 반(反) 이명박 정서에서 촉발된 것"이라며 "섣부른 반미구호는 시위대에 혼란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진보노선이나 운동에 가급적 많은 대중을 동참시키기 위한 '대중성확보'라는 전술적 차원에서 볼 때 반미 구호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편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관광객 피격 사건 직후 국회 연설에서 남북대화를 제의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지만, 이후에는 "사건의 진상은 철저히 밝히되 대북 강경노선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