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문화의 우상’으로 주목을 받은 젊은 작가 최인호의 소설‘별들의 고향’의 연재를 예고한 1972년 8월 26일 조선일보 사고(社告).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서울의 최저 기온이 영하 5도였던 1973년 3월 10일, 서울 명동 입구에서 무릎 위 30㎝까지 올라오는 초미니스커트를 입고 가던 장모(23)양이 파출소로 연행됐다.(다음날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이날 발효된 '개정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경찰은 가위와 자를 들고 '장발'과 '무릎 위 17㎝ 이상 미니'에 대한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그 해에만 1만2870명이 장발 단속에 걸려 대부분 강제로 머리를 깎였다.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형도도 바뀌어 가고 있었다. 1969년 10월 영국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 때 젊은 여성 관객이 무대 위로 속옷을 던진 사건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1970년대 초, 유신체제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통·블·생(통기타·블루진·생맥주)'으로 상징되는 '청년(靑年) 문화'가 대두했다. 1974년에는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1972~1973)한 소설가 최인호(29), 가수 양희은(22)·이장희(27), 저항가요가 된 '아침이슬'의 작곡가 김민기(23), 바둑기사 서봉수(21), 전 고려대 응원단장 이상용(30) 등이 청년들의 '우상'으로 지목됐다.

1973년 3월 10일 한 경찰관이 젊은 여성의 치마와 무릎 사이의 길이를 자로 재고 있다.

도대체 이 새로운 '청년문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1974년 4월부터 논쟁이 불붙었다. 서울대 교수 한완상은 "서양 저항문화의 표피만 들어왔을 뿐 창조적 정신이 없다"고 비판했고, 이화여대 교수 이어령은 "권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평가했다. 어쨌든 그 문화의 핵심이 '저항'이라는 데는 동의하고 있는 셈이었다. 당시 청년층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희귀한 영화인 하길종의 '바보들의 행진'(1975)에서 대학생 주인공은 송창식의 '왜 불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 가운데 장발단속을 피해 달아나고, 자전거를 탄 채 '자유'의 상징인 동해바다로 뛰어든다.

그런 시대적 상황에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소극적인 저항의 코드인 동시에 국가적 훈육의 대상이 됐다. 박정희 정부는 자신들이 이룩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고, 경제개발의 수혜를 입고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은 그 개발의 주체에 대해 반항을 시도하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이슈]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