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나 몰라라'한 부모 대신, 실제로 아이를 키운 조부모를 '양육권자'로 지정한 판결이 나왔다. 현행 민법은 자녀를 위해서라면 조부모나 보육기관 등 부모가 아닌 제3자를 양육권자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법을 적용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가정법원 가사8단독 이헌영 판사는 이모(여·24)씨가 남편 장모(34)씨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과 관련해 이씨 아들(6)의 양육권자로 할아버지(68)와 할머니(66)를 지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씨는 장씨와 '사실혼' 상태로 살면서 아들을 낳은 뒤, 2002년 혼인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도박과 외박을 일삼던 남편이 그 이듬해 가출하자 이씨 역시 아들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 이씨는 가출 직후엔 종종 시부모 집을 찾아오곤 했으나, 약 1년 전부터는 아들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러다 이씨는 2007년, 법원에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아들을 지금부터라도 잘 키우겠다"며 아들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남편이 혼인 기간 내내 자녀 양육에 무관심했고, 수년째 행방을 알 수 없어 이씨를 아들의 '친권자'로 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양육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조부모 밑에서 자라면서 이들과 친밀관계가 긴밀하게 형성돼 있고, 교육환경도 조부모 거주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며 "조부모가 계속 키우는 것이 자녀의 성장과 복리를 위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씨는 친권자로서 월 30만~4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해야 할 의무와 함께, 한 달에 2번씩 아들을 만날 수 있는 '면접 교섭권'만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