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1999년 7월 17일자호 표지〈사진〉엔 '이란의 두 번째 혁명?'이란 제목과 함께 피범벅이 된 티셔츠를 들고 시위하는 한 대학생의 사진이 실렸다. 당시 21세의 대학생이었던 아마드 바테비(Batebi). 그의 인생은 이 사진 한 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때 정부의 검열과 지식인 탄압, 반(反)정부 인사 암살에 항거하는 시위에 참여했던 바테비는 '바시지 민병대'에 얻어맞은 동료 시위대원의 피 묻은 옷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모습이 외신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고, '이란 학생운동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잡지가 나오자마자 바테비는 체포됐다. 고문 기술자들은 구타와 회초리질을 퍼붓다 바테비가 기절하면 상처 부위에 소금을 마구 문질러 정신이 들게 만든 뒤 다시 고문했다. 또한 똥통에 머리를 처박아 오물을 먹게 만들었다고 한다. 바테비의 어머니까지 고문한 뒤 그 비명을 녹음해 들려줬다. 그들은 "스스로 네 무덤을 팠다"고 이죽거렸다.

바테비가 고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고문 기술자들의 요구대로, 동료 학생들을 밀고하고, 국영 TV에 출연해 "시위 때 들고 있던 티셔츠에 묻은 건 피가 아니라 빨간 페인트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타협을 거부했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자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등 전 세계 인권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코노미스트에 등장한 덕에, 세계적인 명사(名士)가 돼 있었다. 당황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Khamenei)는 그의 형을 징역 15년형으로 감형했다.

하지만 수감 생활도 고되긴 매한가지였다. 그는 햇빛을 볼 권리를 빼앗겼고, 체조를 하러 감옥 뒷마당에 나갈 때도 눈을 가려야 했다. 고문은 계속됐다. 작년 2월엔 두 차례 뇌졸중이 발병해, 몸 오른쪽 절반이 마비됐다.

치료 목적으로 지난 4월 잠시 풀려났을 때, 바테비는 가까스로 이라크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미국 땅을 밟았다.

바테비는 지난 7일 이코노미스트 기자를 만났다. 자신을 긴 시련에 빠뜨린 1999년 7월 17일자 이코노미스트를 응시하던 그는 "다른 사람이라면 화가 나겠지만, 난 안 그렇다"고 했다. 그는 "언론이 무얼 필요로 하는지 이해한다"며 "이코노미스트가 그 사진을 싣지 않았다면, 다른 매체에 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12일자)는 바테비와 가진 인터뷰 기사 말미에 그가 운영 중인 블로그도 소개했다. 가장 최근 게시된 사진에서 바테비는 온전한 왼손으로 미 의회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진설명은 이렇다. "당신들(이란의 고문기술자들)의 손이 다시는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