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총격 피살사건은 11일 새벽 5시에 발생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이를 공식 발표한 것은 이날 오후 4시였다. 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남북에서 각각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망에서 발표까지 11시간이나 걸린 것일까.

정부, 11시간 만에 공식 발표

정부는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에 맞아 사망한 뒤 11시간 만에야 이런 내용을 국민들에게 공식 발표했다. 정부가 현대아산으로부터 오전 11시30분 통보를 받고도 무려 4시간 30분이 지난 뒤였다. 도대체 정부는 이 시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발표가 늦어진 것인지를 두고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통일부현대아산으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 청와대 등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통일부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관계부처 합동 대책반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가 총격으로 숨진 사실은 정부 발표보다 1시간 전인 오후 3시쯤 언론에 알려졌다. 박씨의 시신을 안치한 속초 병원에서 상황을 통보받은 강원도 고성경찰서를 통해서였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 대북 담당 부처인 통일부는 이보다도 1시간이 더 지나서야 우리 국민이 북한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처음 공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유화정책을 담은 국회연설이 끝난 뒤로 발표 시간을 늦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 이 대통령 연설 직전인 오후 2시쯤 당국자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지만 당국자들은 "모른다"고 말한 것이 이런 의심을 더해 준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20분쯤 시작해 30분 정도 시정연설을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들은 "최소한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대처 방안을 관련 기관과 협의하는 등 발표를 준비하느라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며 "대통령 시정연설이 끝나는 것과는 무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일부가 오후 4시 발표한 내용은 그보다 한 시간 전 언론에 알려진 내용에서 크게 더 진전된 것이 없는 내용이어서 정부 설명이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아산도 2시간 동안 정부 보고 지연

금강산 관광 주관 회사인 현대아산도 북측에서 오전 9시 20분 박씨 사망사실을 통보받은 뒤 2시간 10분이 지난 오전 11시 30분에야 통일부에 이런 내용을 통보했다. 현대아산은 금강산 현지에 나가 있던 직원이 북측의 통보를 받자 즉시 의사 1명과 간호사 1명, 현대아산 직원 등 5명이 차량으로 현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온정리 사무소에서 현장까지는 차로 약 20분 거리라고 한다. 현장에서 사진 등을 찍고 시신을 수습해 돌아온 시간이 오전 11시20분쯤이며, 이때 유선으로 서울 본사에 사고 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현대아산 본사는 내부 보고와 상황 회의 등을 거쳐 통일부에 알린 시간이 오전 11시30분이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지체한 시간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는데도 북측 당국의 통보를 즉시 본사에 보고하지 않은 채 현장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는 설명에 의문이 남는다. 평소 금강산 현지와 현대아산 본사는 유선으로 자유롭게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 강윤구 사회정책수석,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박형준 홍보기획관(왼쪽부터)이 11일 청와대 본관 앞에 서서 뭔 가를 논의하고 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북한은 왜 4시간 20분 뒤에 통보했나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박왕자씨는 새벽 4시30분 숙소를 나갔고 피격된 시간은 새벽 5시였다. 현대아산은 오전 7시40분쯤 숙소 출발을 위해 관광객을 소집했으나, 박씨가 보이지 않자 호텔 등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오전 9시 20분쯤 북측 금강산사업 운영주체인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소속 2명이 온정리에 있는 현대아산 금강산사업소에 찾아와 피격 사망 사실을 구두로 통보했다.

북한이 사고 후 내부 과정을 거쳐 현대아산에 알리는 데 4시간20분이 걸린 것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북측 금강산 담당자들이 자체 처리를 하지 못하고 핫라인을 통해 평양에 보고하고 평양 당국이 검토해 지침이 내리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이 정도 사안이라면 100%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인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측도 1998년 금강산관광사업 개시 후 처음 생긴 일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적지않게 당황하고 고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광객이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실을 4시간 넘게 통보조차 하지 않은 것은 정상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