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는 초(超)고유가 상황이 수개월째 계속되는데도 에너지 불감증(不感症)이 더 커지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하루 전력수요가 11개월 만에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운 9일 낮 한 에너지 전문가는 이렇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두 개의 에너지 소비 관련 자료를 근거로 내놓았다. 첫째는 한국교통연구원이 지난달 23일부터 일주일 동안 서울·부산·대구·대전 등 6대 도시 자가용 승용차 보유자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승용차 운행 조사'.
올 들어 6개월여 만에 휘발유 가격이 50% 이상 폭등했지만 "차량 이용을 전혀 줄이지 않고 있다"는 응답자가 48%에 달했다. "절반 이상 차량 이용을 줄였다"는 이는 28%에 그쳤다.
둘째는 정부의 장관급 이상 고위층의 유류비 월별 운행내용. 국무총리를 포함한 16명의 국무위원(노동·국방·법무부 제외)의 관용차는 모두 배기량이 3000㏄급 이상이며, 대부분 에쿠스인 것으로 파악됐다. 관용차의 기름 값 지출비도 지난 3월 이후 3개월 연속 상승 중이다.
같은 시기 시민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외치면서도 정작 지도층은 '모르쇠'로 일관한 셈이다. 일부 장관들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나 연료 소비가 적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용했지만 생색내기용 '일회성 행사'였음이 판명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유와 가스, 유연탄 같은 에너지 발전 연료 가격이 올 들어 50~80% 폭등하고, 국제유가 상승세가 5년 넘게 계속되지만 그 종착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고유가 추세는 1861년 이후 가장 장기간에 걸친 상승 기록이며, 본격적인 '에너지 고가(高價) 시대'의 개막을 알린다"는 분석(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도 나온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은 역주행(逆走行)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총 에너지 소비와 전력 수요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5.5%, 9.4% 증가해 경제성장률을 웃돌았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올 들어 전력 수요 최고 기록은 지난 1월 17일 일찌감치 깨졌고 매월 작년 대비 10% 가깝게 전력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행정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4일 근무제(미국 유타주)를 도입한다든가, 차량 2부제(홀짝제) 전면 실시(오는 20일부터 중국 베이징시) 같은 긴박한 자구(自救) 노력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전 직원의 90%인 2만 명에게 주1회 재택 근무(일본전자회사 NEC), 승객 수하물 1개당 15달러의 별도 요금 부과(미국 아메리칸항공) 같은 절박함은 없다.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에너지 소비에 대한 불감증이 정부와 민간에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고가 에너지 시대'는 가정과 직장, 국민경제를 옥죄는 최대 위협 요인이다. 단적으로 지난해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액은 950억 달러로 총 수입액의 27%에 달한다. 이는 1, 2위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액을 합친 것(763억 달러)보다 훨씬 더 많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인구 규모로 세계 28위지만 에너지 소비량으로 세계 9위, 석유는 세계 6위의 소비 대국(大國)이다. 만연해 있는 '에너지 소비 불감증'을 추방하고 위기의식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숱한 고유가 대책은 '속 빈 강정'이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