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의 산실(産室)이자, 최고 권위의 종교 도시인 콤(Qom).
이란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Khomeini·1902~1989)가 공부했던 '호제에 엘미에' 이슬람 신학교 옆을, 짙게 한 눈 화장을 아르마니 선글라스로 가리고 노란색과 은색으로 염색해 한껏 부풀린 머리를 스카프로 덮은 한 여성이 지나갔다. 푸른 타일로 장식된 거대한 모스크들은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친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이 도시의 광장에서, 올해 초 이란 정부는 마약 밀매범 3명의 목을 대형 크레인에 매달아 공개 처형했다. 처형 동영상은 휴대전화를 통해 이란인 사이에 번졌다. 이란 내 처형자 수는 2006년 177명에서 작년엔 307명으로 급증했다. 거의 하루 한 명꼴이다. 회사원 미트라(여·29)는 "입 다물고 정부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압력"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수도 테헤란의 중심가 발리아스 거리에 있는 '멜라트(Mellat·국민) 공원'에선 1000여 명이 시위하다가 강제 해산됐다. 이란에선 매우 이례적으로 큰 규모였다. 언론엔 보도도 안 된 이 집회는 아랍국들이 '페르시안 걸프'를 '아라비안 걸프'로 부르는 데 항의하는 시위로 알려졌지만, 이란 네티즌들 사이에선 "생활고와 경제난에 항의하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 반(反)정부 시위"라는 소문이 급속히 퍼졌다. "한두 달 내에 세상이 뒤집힌다" "부자들은 벌써 모두 빠져 나갔다"라는 '카더라 통신'이 무성하다.
이란 정부가 올해 공식적으로 밝힌 인플레이션만도 24%. 그러나 체감 물가는 훨씬 높다. 테헤란에서 4500리알(약 450원) 정도이던 생수 작은 병이 6000리알(33% 인상), 한 팩에 5000리알이던 우유는 7500리알(50% 인상)이 됐다.
무분별한 저리(低利) 주택 매매 대출 탓에, 부동산값도 치솟았다. 중견 기업의 간부인 하미드(50)는 "캐나다로 투자이민을 가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인 알리(35)는 "석유·가스부터 구리·철·우라늄까지 모든 걸 가진 우리가 왜 두바이처럼 될 수 없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미트라는 "지금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란은 전 세계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며 "지금의 이란은 종교로 국민의 머릿속까지 통제하는 '동물 농장(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풍자소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슬람 성직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콤에 있는 최고 권위의 신학대학원 '버게르 알 울름'의 아마드 바에즐 총장은 "주요 선거에서의 승리가 말해 주듯이, 이란에는 이슬람 통치 체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 기반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삶은 피폐했지만, 이란 권부(權府)는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 투쟁에 열심이다. 내년 8월 재선을 노리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최근 들어 "정부의 임무는 '마흐디'(Mahdi·시아파 이슬람이 재림할 것으로 믿는 구세주)가 오실 때를 예비하는 것" "마흐디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며 자신의 통치행위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미국의 한 잡지는 이를 두고, '터번을 쓴 독재(turbaned dictatorship)'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