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새벽 0시45분쯤, 시위대가 점거한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앞. 흰 야구모자에 아래 위 모두 흰 옷을 입은 50대 남자가 호텔 현관으로 다가갔다.
호텔측은 시위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회전문식 현관문을 잠그고, 로비의 불을 모두 껐다. 그 남자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철제의자 밑받침을 집어 들더니, 회전문의 둥근 유리벽을 강하게 때렸다. 두번 만에 유리벽이 박살났다.
민간인에게 폭행을 가하고 호텔에 난입해 설비를 파괴하는 테러 수준의 폭력시위를 주동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자정을 전후한 심야시간대 10~20명씩 몰려다니며 경찰버스와 민간 시설물을 파괴한 뒤, 뒤에서 다른 시위대가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면 "세종로에 놀러 왔냐"고 위협적으로 윽박지르며 폭력을 선동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의 연령층은 다양하다. 20~30대는 주로 10~20명씩 몰려다니며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사람이 많고, 40~60대 중·장년층은 얼굴을 노출시킨 채 2~3명씩 시위대 사이 군데군데 섞여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과격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시위대를 향해서도 "이 ××, 너 프락치 아냐"는 식으로 욕설을 퍼붓고 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경찰버스에 밧줄을 묶어 끌어내거나 쇠파이프, 철근절단기 등 철제 공구를 사용해 버스를 부수는 것을 처음 선동하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들이다.
경찰은 폭력 시위를 주동하는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은 얼굴을 노출한 40~60대 중·장년들은 특정 단체 소속 회원이라기보다, 일용직 근로자이거나 무직자, 노숙자 등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보고 있다. 이들 중에는 술에 취해 있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지난 10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폭력시위를 벌인 혐의로 구속된 이모(44)씨와 윤모(51)씨는 각각 일용직 건설노동자, 노숙자였다. 이들은 단체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으면 사진 채증(採證) 자료가 있더라도 신원을 확인하기가 힘들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20~30대 청년들은 이들과 다르다. 경찰 관계자는 "그들은 시위 현장에서 상당히 단련이 된 조직적인 세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총련 등 대학 운동권 학생들, 노동·좌파단체 회원 등 전문적인 '시위꾼'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경찰과 대치하는 최전선에서 폭력 시위를 선동하고는, 경찰의 본격적인 검거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뒤쪽으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경찰 관계자는 "소수의 이들이 최근 시위 분위기를 폭력적으로 확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