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논설실장

경제계에서 들끓는 분노의 수위가 이만저만한 수준이 아니다. 경제인들의 분노는 광고를 방해하는 네티즌 세력이나, 광우병 괴담을 비틀어서 퍼뜨린 TV 방송사와 포털, 매일 밤 폭력 시위를 선동하는 좌파 단체를 향한 것이 아니다.

청와대와 집권당이 성토 대상이다. 경영자총협회 이수영 회장은 참다 못한 듯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무기력한 모습을 공개 석상에서 비판했다. 이런 발언은 점잖은 축에 들어간다.

어느 오너 기업인은 "하다 못해 노무현 정권도 지지도가 바닥일 때 국내 영화인의 반발에도 불구, 스크린 쿼터를 축소해 미국 영화가 더 수입되도록 했다"며 인신공격성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전문 경영인은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 하나 조용하게 처리 못한다면 이 정권이 과연 이미 바로 우리 곁에 와있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인플레 파동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라고 한숨 쉬었다.

'잃어버린 10년' 시대를 끝내는가 싶더니 다시 '잃어버린 5년' 시대가 개봉됐다는 한탄이다. 이런 낙망이 기업인들에게만 닥친 것은 아니다. 조그만 식당 주인조차 "혹시나 경기가 풀릴까 했더니 이제 보니 나라가 우리 가게를 못 지켜줄 것 같다"고 성토했다.

국가가 내 회사와 내 가족, 그리고 나를 지켜주지 못할 레드 카드를 받는 상황이라면 이 정권의 시장 가치는 휴지 조각이나 다를 게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권은 글로벌 경제 흐름에 역주행하는 정책으로 경제를 멍들게 하는 펀치를 계속 던졌다.

4년 전부터 국제 유가는 상승해왔고, 1년 전부터는 금융위기가 지구상을 휩쓸었다. 게다가 곡물값 폭등으로 물가 전선에서 빨간불이 깜박거렸다.

중학생 수준의 경제 감각만으로도 작년 말부터는 안전벨트를 맨 후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해야 마땅한 국면이었다.

그런데도 선거 연승(連勝)의 소주 폭탄주에 취해 30년 전처럼 고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허망한 바이러스를 살포하더니, 고(高)환율 정책과 재정 지출 확대, 금리인하 유도로 성장 드라이브를 걸었다. 회오리 광풍(狂風)을 정면에서 뚫고 통과할 최첨단 747 제트기라도 준비해 놓은 듯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촛불 벼락을 맞아 제 정신이 돌아온 덕분인지, 더 나빠진 상황에 놀란 충격 때문인지, 돈키호테식 헛된 꿈은 넉 달여 만에 정리됐다. 온 국민을 무려 200년 전의 성장산업으로 끌고 가던 대운하를 포기했고, 성장보다 물가를 중시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엉뚱하게 공격 일변도로 치달리다 기업과 가계가 피흘리는 광경을 보고서야 수비형으로 돌아선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경제팀, 한나라당이 경제가 돌아가는 몰골을 제대로 알아차릴 때까지 국민들이 지불해야 할 수업료는 이쯤 해서 끝날 것 같지 않다. 청와대는 경제 살리기로 돌아가자고 호소하지만, 경제를 살릴 만한 불씨조차 사그라지는 판이다.

예를 들어 공기업 개혁을 통해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려던 꿈은 가물가물해졌다. 파급 효과가 날 만한 공기업을 민영화 대상에서 빼내더니, 간판에서 '민영화'를 떼어내고 '선진화'라는 애매한 것으로 교체해버렸다.

규제완화 정책이나 외자 유치도 경제 살리기의 불쏘시개 감으로 믿을 수 없게 됐다.

미국 쇠고기 하나에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는 소동을 벌인 이 정부가, 기득권 세력 간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규제완화 작업인들 시원하게 할 수 있겠느냐고 기업인들은 시큰둥해 한다.

더구나 한국은 국제적으로 도무지 통하지 않는 상식과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토종 정서로 똘똘 뭉친 나라라는 이미지를 이번에 또 심고 말았다. 지식보다 감정이 앞서고, 말보다 폭력이 앞서는 나라에 뭘 믿고 외국 기업들이 덥석 투자하겠는가.

물론 꿈이 완전히 깨졌다고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제조업에 제공되는 혜택을 3차 산업에도 과감하게 제공하고, 소비 지출을 더 자극하는 식으로 과감하게 정책 방향을 전환, 조그만 돌파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날을 낙관하기에는 먹구름이 너무 짙다. 이런 위기에 부총리 자리가 없어 경제가 안 풀린다며 직급 투정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내 가정, 우리 회사를 국가가 지켜주지 못하리라고 절망할 때 국민은 대통령도, 집권당도, 경제팀도 믿지 않는다. 제각각 자기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