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만해도 초등학교에서는 "집에 아버지 없는 사람?" "집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 봐요" 하는 식의 '무자비한' 가정환경조사를 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등상을 타거나 반장이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환경이 바뀐 것은 교사들의 의식 변화와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발언 덕분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나서 '공장형' 급식을 유기농 자연식으로 바꾼 경우도 있다. 그냥 '맞춰서' 살아왔던 학부모들이 행동하면서 세상과 학교는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 '행동하는 부성애·모성애'가 '386식 정서',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정서와 만나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다면 광화문 밤거리에 나와보면 된다.

"얼른, 너도 저기 가서 붙이고 와."

흡사 대형마트 사은품 행사에 아이를 데리고 와서 "너도 해보라"고 권하는 장면 같았다. 얼마 전 조선일보 '테러'가 있던 날, 아이 엄마는 서둘러 예닐곱 살쯤 된 아이 손에 '조중동 아웃'이란 스티커를 쥐어 주었고, 아이는 건물에 스티커를 붙이고 돌아왔다. 엄마는 아이 손을 붙잡고 또 다른 신문사로 이동하고 있었다.

요즘 광화문 밤거리에서는 유치원생, 초등생 시위자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25일에는 초등학교 6학년 소년이 연행됐다가 풀려나는 일까지 있었고, '과격파'들이 광화문을 점거한 26일 밤에도 이 현장에는 아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이런 궁금함이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너나 처먹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한 걸까? 아빠가 '쓰레기'라고 부르는 신문을 아이는 읽어 본 적이 있을까? 아이는 엄마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까? 아이는 또 알고 있을까? 자신이 하는 일이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고,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미국 소에 관한 논쟁'에서 특정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어느 전교조 교사가 그랬다는 것처럼 특정 동영상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아이들 대답은 뻔하다. '토론'이라는 민주적인 틀을 갖췄지만, 사실은 가짜다. 일방적인 정보를 주고, 그 틀 안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스스로 판단할 권리'는 아이의 타고난 권리다. 아이에게 편향된 정보를 주고, 외눈박이로 만드는 건 인권 침해다. 남이 자기아이에게 했으면 큰일 날 일을, 요즘은 부모 스스로 하고 있다.

어쩌면 '소년소녀 시위대'가 눈에 띄는 건 '목적이 수단을 합법화한다'는 낡은 386식 사고방식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 세대의 일부는 '나쁜 것을 박살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도 좋다'는 논리가 낯설지만은 않다.

물론 이렇게 대단한 결의가 아니라, '청계천 놀러 가듯' 저녁 먹고, 아이들 손잡고 집회나 시위현장에 나오는 부부들도 있다. 절박함이 없는 요즘 시위문화의 반영이겠지만, 이 역시 부모가 권할 일은 아니다. 차도를 점거하고 그 거리에서 소리지르는 위법적 행위가 갖는 짜릿함, 일종의 '반달리즘(문명파괴) 조기교육'을 받은 아이가 학교로 돌아가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건 고문처럼 느껴질 테니까.

아기들을 유모차에 태워 집회, 시위 현장에 동반하는 일도 '용감무쌍'해 보인다. 아무리 '안전한 데만 골라 다닌다'고 해도, 현장이란 건 상황이 급변할 수밖에 없다. 의도하지 않아도 아기 유모차가 전경 앞의 '방패막이'가 될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다. '내 아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라고 말하지만, 아이보다 '자기 생각'이 더 중요했던 건 아닐까. 행여 그렇다면, 그걸 모성애라 포장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