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告示)의 관보 게재를 하루 앞둔 25일, 촛불 시위대 3200명(주최측 추산 2만명)이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며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세종로가 전경버스로 막히자, 신문로에서 청와대 방면으로 이어지는 4개 도로에 몰려 경찰 저지선을 뚫기 위해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지난 1일 새벽 이후 처음으로 시위대에 물대포를 발사했다.

그러나 경찰은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기 시작할 때 적극적으로 차단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 경찰은 이날 낮에도 100여명에 불과한 시위대에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부근 도로를 1시간 가까이 내줬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과 어청수 경찰청장의 "불법 시위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던 공언은 하루 만에 공염불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장관 고시(告示)를 하루 앞둔 25일 밤 10시30분쯤 서울 광화문 근처 골목에서 청와대 쪽으로 진출하 려는 촛불시위대가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태평로·세종로 저녁 7시부터 차단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는 이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20분 만에 집회를 끝내고 오후 7시30분부터 태평로를 점거하고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시위 대열의 앞에는 화물연대 본부·노동자의 힘·안티 이명박·민주노동당·전교조 등의 단체 깃발이 대거 눈에 띄었다. 대책위는 이날 개별 단체와 인터넷을 통해 인원 동원을 적극적으로 독려했으나, 당초 목표했던 5만명에 못 미치는 3200여명(경찰 추산, 주최측 주장 2만여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대는 세종로사거리를 막아선 전경버스에 '미국에 굴복 말고 국민에 항복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고, "이명박은 물러나라", "고시강행 어림없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이후 구세군회관 옆길, 세종문화회관 뒷길 등에서 경찰에 모래와 흙을 던지고 물을 뿌리며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시위대는 밤 11시10분쯤 세종문화회관 뒷길에 서 있던 전경버스에 밧줄을 걸어 끌어냈고 버스 문을 부수고 들어가 경찰봉과 방패 등을 끄집어 냈다. 시위대는 탈취한 전경 헬멧과 방패 10여개를 신문로의 오피시아 빌딩 앞 인도에 쌓아놓았으며, 경찰봉으로 다른 전경버스의 유리창을 박살내기도 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경찰버스가 끌려나간 틈으로 시위대가 몰려들자 경찰은 살수차를 배치해 시위대에 물대포를 쏘며 저지했다. 그러나 시위대 2명이 살수차에 올라가 분사구를 막으며 맞섰다. 앞서 밤 11시쯤 구세군회관 옆길에서는 시위대와 대치하던 전경 2명이 시위대에 붙잡혀 끌려다니다 경찰에 인도되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경찰에 격렬히 맞섰다.

◆대낮부터 도로로 진출

대책회의 관계자 30여명은 이날 오후 2시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자치센터 앞에서 '고시 강행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박2일 철야 대정부투쟁을 선언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막히자, 지하철 3호선 경복궁 역 부근에 있던 시위대와 합류해 3개 차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3시45분쯤 시위대를 인도로 밀어 올리는 한편, 이에 불응한 47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현역 국회의원인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도 경찰서에 붙잡혔으나 곧 석방됐다. 초등학생 1명도 전경버스에 태워졌다가 풀려났다.

경찰은 이날 차도를 점거하고 격렬하게 시위를 벌인 불법시위자 120여명을 연행했다.

◆'엄정대처' 공언, 하루 만에 공염불

경찰은 이날 시위대에 도로를 내준 채 내내 끌려 다녔다. 오후 3시쯤 경복궁 역 인근 도로를 막은 시위대는 100여명 안팎에 불과했지만 경찰은 이들의 도로점거를 막지 못했다.

경찰은 뒤늦게 연행에 나서 40여명을 끌어냈지만 연행자를 실은 전경버스가 시위대에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전날 저녁 촛불시위대 900명이 태평로로 진출할 때 폴리스라인을 쳤던 경찰은 이날은 시위대의 도로점거 과정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한편, 이날 서울광장에서는 보수단체도 릴레이로 집회를 열었다. 지난 5~6일 서울광장에서 호국영령 추모제를 열었던 특수임무수행자회는 이날 낮 6·25전쟁 기념행사를 열었고, 오후 5시부터는 국가기도연합 소속 기독교 회원 300여명이 '구국 기도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