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생들이 새터민(탈북정착민) 학생들의 반만 닮았으면 좋겠어요."

20일 오후, 인천 논현중학교에서 만난 김향희(여·47·체육담당) 교사의 목소리에는 새터민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 새터민 학생들은 무단결석이 잦고 학교 적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만, 논현중에 다니는 6명의 새터민 학생들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예의도 바른 모범생으로 유명하다.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새터민 학생 배진호(17·가명·중3)군은 올해 선도부장까지 맡았다.

"일곱 살에 탈북해서 8년간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왔어요. 처음엔 '펜', '스트레스' 같은 단어도 몰라 친구들이랑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죠. 학교 공부도 어려웠어요. '구개음화', '두음법칙' 같은 기초문법도 몰랐으니까."

날카로운 눈매에 굳은 표정, 북한식 말투…. 진호를 비롯한 새터민 학생들은 좀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점심 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도 교실 한편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랬던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한 건, 작년 김향희 교사가 이 학교에 부임해 다른 교사들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면서부터다.

20일 오후 인천 논현중학교에서 김향희 교사가 새터민 학생과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상담을 하고 있다.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아이들을 보는 순간 내 자식 같고, 잘 가르쳐야겠다는 마음에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 사정이 어떤지를 잘 모르니까 선뜻 나서기가 힘들더군요."

김 교사는 작년 방학과 학기 중 주말을 온통 새터민 학생을 위한 교사 연수(120시간)에 쏟아 부었다. 누가 요청한 것도,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연수를 받은 후,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는 구충제가 귀해 기생충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는 얘기를 듣고, 하루는 새터민 학생들을 차례로 불러 구충제를 선물로 줬다. 새터민 학생들이 상담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피자를 사주면서 편하게 수다를 떨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통 문화를 알려주기 위해 새터민 학생들과 다도(茶道)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김 교사의 활동이 동료 교사들에게 자극이 됐을까. 다른 논현중 교사들도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다. 따로 학습상담을 하거나 자장면을 사주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고, 새터민 학생들과 사물놀이를 연습해 작년 가을축제에서 공연도 했다.

처음에는 교사들에게 억지로 끌려 다니는 듯했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교사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작년에 김 교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학생들은 "선생님, 얼마나 슬프세요? 힘내세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김 교사가 고맙다고 답장을 하자, 이번에는 전화를 해서 "저희가 상가(喪家)에 가서 도울 일은 없겠느냐"고 했다.

교사들과 새터민 학생들이 서로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변해갔다.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사물놀이 공연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먼저 웃고 장난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속 깊이 묻어놨던 고민도 친구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굳어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점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올해 3월 김 교사는 보다 체계적으로 새터민 학생들을 돕기 위해 인천 지역 다른 학교 교사 20명과 함께 '미추홀학교 연구회'를 만들었다. 뜻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는 교사들을 돕고, 함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연구회는 새터민 학생들이 또래 수준만큼 수업을 따라와야, 학교 적응이 쉽다는 판단 아래 새터민 학생용 교재를 개발하고 올여름에는 이들을 위한 캠프도 열 계획이다.

세워 놓은 계획은 많은데, 이를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막막할 때 교사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선생님이 희망이다' 캠페인이었다. '미추홀학교 연구회'는 교사연구모임 지원금으로 500만원을 받았다.

김 교사는 "교사들이 의욕적으로 학생들을 위해 뭘 해보려 해도, 돈이 없어 뜻을 접는 경우가 다반사였다"며 "조선일보와 우리 사회의 지원이 헛되지 않도록 새터민 아이들을 잘 지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