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은 정글 속 석조물의 정교한 부조(浮彫)들로 유명하다. 하지만 돌로 된 벽과 기둥 표면에는 언제부턴가 균열이 부쩍 늘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하게 착색된 곳도 많다.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에서 그리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이르기까지 사정은 비슷하다.
세계 각지 석조 유적들이 이런 현상을 보이는 것은 돌에 기생하면서 풍화(風化)를 촉진시키는 미생물들 탓이라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25일 보도했다. 지질 미생물학자들이 최근에야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미생물과의 전쟁'에 나섰지만 전세(戰勢)를 돌려 놓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유적을 괴롭히는 미생물들은 탄화수소를 먹고 사는 박테리아에서부터 미세 구멍이 난 바위 속에 번식하는 곰팡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떤 박테리아는 오염물질을 먹고 석조물이나 철골, 칠 등을 부식시키는 산(酸)을 방출한다. 이들은 여느 동식물들이 발붙이기 힘든 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인류의 소중한 유산들을 위협한다.
앙코르와트의 경우 청록색 세균인 '사이노박테리아'가 범인이었다. 20년 전 사원 벽에 난 이끼를 벗겨낸 뒤 이 세균들이 번성하면서 석조물의 수분·햇빛 흡수량이 급증했다. 그 결과 석재(石材)의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면서 표면과 내부 구조가 쉽게 부서지게 됐다. 이런 사실을 밝혀낸 독일 지질 미생물학자 토마스 바르샤이트(Warscheid) 박사는 "현재 사원의 색도 60~70% 가까이 검게 변했다"고 했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도 박테리아가 대리석의 결을 파고들어 수분의 과다 흡수와 팽창을 반복한 결과 석조물의 표면과 기둥이 취약해졌다. 대리석 구멍에는 이끼가 파고들어 '벌집형' 풍화를 낳았다.
이들 박테리아는 미생물을 퇴치하는 약품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면역력을 갖는다. 미 뉴올리언스의 한 대학에서는 허리케인이 닥친 후 곰팡이가 슨 아프리카 유적에 화학물질인 아르곤을 뿌려 산소 결핍 환경을 만들어 곰팡이를 퇴치했다.
미생물 중에는 유적의 '아군(我軍)'도 있다. 앙코르와트나 터키 카파도키아의 화산암 유적인 '요정의 굴뚝'의 경우 이끼가 수분과 열의 과다한 흡수를 막아준 걸로 조사됐다.
학자들은 결국 미생물과의 전쟁도 유적들에게는 필연적인 '소멸의 순간'을 잠시 연기할 뿐이라고 말한다. 바르샤이트 박사는 "우리는 유적을 20~30년 보존하는 방법은 많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결국 이들 유적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