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까지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씨는 시장에서 옷장수를 해 번 돈으로 노동자들과 수배자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창동 집은 노동자, 학생들의 공부방이었고 숙소였다. '창동 어머니'로 통했던 그는 노동운동 현장마다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항상 선두에 섰다. "내가 못다 한 일 이뤄달라"는 아들의 마지막 부탁 때문이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이후 급진화한 노동운동을 벗어나 인권·통일운동 쪽 일을 하고 있다.

▶전태일 동생 전태삼씨는 형의 분신 후 형처럼 평화시장에서 재단보조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했다. 추적을 피해 '김흥택'이라는 가명을 썼다. 1981년 청계노조가 강제 해산되면서 구속돼 2년 징역을 살았다. 그 후 취직과 해고를 거듭하며 청계천 주변에서 떠돌았다. 생계를 위해 삯바느질로 시작해 옷 공장을 차리기도 했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 쌍문동에 산다.

▶여동생 전순옥씨도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했다. 1989년 영국 유학을 떠나 노동운동사를 다룬 논문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귀국해선 교수 자리나 정치권 입문 제의를 뿌리쳤다. 창신동에 참여성노동복지터를 차려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재봉일을 하고 있다. 막내 여동생 전태리씨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청계천에서 빈민 자녀를 위한 놀이방을 운영했다. 지금은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한다.

▶전태리씨 남편이자 전태일의 매제가 임삼진 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이다. 서울대 철학과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 징집됐고 제대 후 노동·시민운동을 했다. 2000년엔 용산 미군부대 영안실이 포르말린을 한강에 흘려 보낸 사실을 폭로했다. 지난 3월까지 한양대 교통공학과 연구교수로 일하던 그가 그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에 임명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만든 버스중앙차로제를 적극 지원해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전태일의 매제가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들어간 일이 화제다. 일부에선 그의 경력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 이후 중립을 지켜왔다"며 "전태일 열사의 원래 생각도 좌파적이고 극단적인 방법보다 인간적이고 소박한 봉사와 헌신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전태일 분신 이후 38년, 파란 많은 역정을 지내온 가족들 못지않게 그도 굴곡의 삶을 살았다.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소통'의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