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쇠고기 총파업' 방침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총파업' 카드는 어느 정도 예상되었지만, 지도부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충실히 따라 주리라 믿었던 단위 사업장의 조합원들이 '명분 없는 정치 파업'이라며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부는 "미국 쇠고기가 근로자의 건강을 해치므로 총파업으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그 명분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한마디로 더 이상 상급 단체의 정치투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투표에 참가하지 않거나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찬성률의 분모(分母)가 산별(産別) 노조 전체이므로 현대자동차와 같은 단위 사업장에서 부결되었어도 상급 단체의 지침에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본질을 외면한 형식 논리에 불과하다. 본질은 회사 내 다수 근로자가 파업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회사 밖 먼 곳에서 내리는 지시에 따라야 한단 말인가? 오히려 제대로 된 지도부라면 현장 조합원의 이 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에 대해서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외치는 노조가 정작 자기 조합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노조 지도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상당한 지지를 얻은 만큼 이른바 쇠고기 파업도 쉽게 이루어지리라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촛불집회와 파업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별 근로자에게 촛불집회는 일을 마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개인 행위이다. 그러나 파업은 일을 멈추는 생산 중단이며, 개인의 선택이 배제된 집단 행동이다. 많은 근로자는 촛불은 오케이지만, 파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대낮부터 일을 멈추고 시위하지는 않았다.
이 점이 바로 한국 노동조합의 문제점이다. 즉 조합원은 온건하게 행동하는데, 지도부가 과격한 것이다. 조합원은 기업과 경제에 관심이 있는데, 지도부는 정치에 관심이 있다. 조합원은 기업별 노조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도부는 굳이 산별 노조를 고집한다.
요컨대 조합원은 분권화된 차원에서, 실제적인 문제를 놓고,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도부는 대단위로 집중화한 상태에서, 정치적 이슈를 놓고, 힘을 과시하여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지도부의 생각은 21세기 현실과 국제적 추세에 역행한다. 예컨대 산별 노조와 산별 교섭만 해도 원래 유럽에서 유행했으나, 이제는 기업 단위로 급격하게 분권화되고 있다. 산별 교섭은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아 급변하는 경제 속에서 신속하게 적응할 수 없으므로 개별 기업의 탄력성을 보장하는 기업별 교섭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법이 바뀌어 산별 교섭보다 불리한 내용의 기업별 교섭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차제에 산별 교섭을 없애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일부 노조는 흘러간 유행가에 불과한 산별 교섭에 집착하고 기업 단위 노조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지금 급등하는 유가와 물가로 기업과 근로자 모두가 힘들다. 이런 때 명분 없는 정치파업을 벌인다면 그 손실은 고스란히 물가 상승과 고용 감소로 근로자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진정으로 국가 경제와 국민 안전을 생각한다면 불필요한 집단 행동을 자제해야 함에도 오히려 상급단체 지도부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데 조합원을 동원하려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과연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 의식이라도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21세기형 노동조합은 서비스 노동조합이다. 지도부는 조합원에게 귀 기울이며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기에 작은 조직이면서 유연해야 한다. 단체 교섭과 단체 행동의 범위 또한 노사 상생(相生)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