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조덕현(51·이화여대 교수) 개인전이 8년 만에 열리고 있다. 조씨는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다음달 3일까지 《리―컬렉션(re―collection) 전》을 통해 오래간만에 신작들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에 조씨는 《20세기의 추억》을 주제로 20세기 전반의 흑백 인물사진을 대형 캔버스에 연필로 정밀하게 옮겨 그리는 연작을 발표했다. 긴 침묵 끝에 개막한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사진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고 하는 이유는 그 동안 조씨가 사진 그림과 동떨어진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8년간 그는 문자 그대로 땅을 팠다. 전남 영암과 프랑스 파리에 수십 마리의 개 조각상을 파묻은 다음, 자기가 묻은 조각상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는 "세기말을 끔찍하게 넘겼다"고 했다.
그는 "사진 그림이건 발굴 퍼포먼스건, 내 작업의 핵심에는 언제나 기억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며 "나는 사라진 것, 잊혀진 것, 땅에 묻힌 것을 끌어내 의미와 지위를 부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인전에 그는 원로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80·본명 노명자)와 재일교포 출신으로 영국 귀족이 된 로더미어 자작부인(58·본명 이정선)의 초상을 걸었다. 전시의 키워드는 '기억'과 '대칭'이다.
가령 경성방송국 설립자의 딸인 노라노는 첫 결혼에 실패하고 해외로 유학을 갔다. 한편 일본에서 자라나 영국 언론재벌과 결혼한 로더미어 자작부인은 남편이 타계하자 유골을 '낯선 조국'인 한국에 가져와서 무주 백련사에 모셨다.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간 인생(노라노)과 밖에서 안으로 돌아온 인생(로더미어 자작부인)이 대칭을 이룰 뿐 아니라, 초상화 한 점 한 점의 구도와 그림을 건 배치까지 치밀한 대칭을 이룬다.
그러나 이런 정교한 장치보다 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전시장 곳곳의 여백과 그 여백에 넘쳐흐르는 미묘한 슬픔이다. 조씨는 수많은 초상화를 통해 두 사람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면서, 중간 중간에 의도적으로 텅 빈 액자를 걸었다. 그 여백을 통해 조씨는 대략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여기 걸린 그림을 보면서 여러분께서 어떤 인생, 어떤 사연,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시건 전부 맞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해석이 정답입니다." (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