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들은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을 붙잡고 "오늘 뭐 배웠니?"라고 묻는다. 지지난 주에 실린 칼럼을 읽은 부모라면 "뭐 배웠니"라고 물은 후 "그럼 오늘 배운 것 발표 좀 해 볼래?"라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대인 부모들은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배운다는 것은 수동적인데 비해 질문한다는 것은 자기주도적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단순히 배우려고만 한다면 아무 준비 없이 학교에 가도 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질문을 하려면 반드시 예습이 필요하다.
필자가 한영고에서 새내기 교사로 재직할 때 아주 까다로운 학생 둘이 있었다. 한 학생은 꼭 수업 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해 선생님들을 긴장시켰고, 또 한 학생은 매번 수업이 끝나면 따라 나와 복도에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이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아주 많이 괴롭히면서 공부도 많이 시켰다. 수업 시간에 두 학생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반보다 수업 준비를 더 철저히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학생들이 있던 반에서 수업을 하고 나오면 선생님들끼리 서로 "오늘은 어떤 질문을 받았나요?"라고 물을 정도였다. 이 학생들의 질문은 그 날 배운 내용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런 질문을 하기 위해 철저한 예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공부를 굉장히 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둘 모두 서울대에 합격했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한영외고 재직 당시 학생들 발표수업 얘기를 하면서 발표 잘 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말했다. 그 때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표를 더 잘 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발표수업을 듣는 다른 아이들의 질문이 점점 더 날카롭고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 잘 하는 아이로 키우는 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이들은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많이 한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라고 묻는가 하면 "그런데 이건 왜 그래" 등 정말 성가실 정도로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바쁘더라도 "엄마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가르쳐줄게"라고 피하지 말고, 질문을 기쁘게 받아줘야 한다. 아이의 질문에 완벽하게 답변해줄 수 없다면 아이와 같이 답을 찾아 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뭔가를 알아가는 배움의 기쁨을 느낀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문을 잘 받아주는 선생님 시간에는 아이들이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선생님이 보기에 질문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기쁘게 답을 해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그 선생님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학교는 아이의 호기심을 풀어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