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주부 김모씨는 지난 4월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서울 서초동 서울가정법원을 찾았다. 가정에 소홀한 남편에게 자극을 주려고 홧김에 "갈라서자"고 소리쳤던 김씨는 남편이 덜컥 "그러자"고 해버리는 바람에 함께 법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는 협의이혼 신청을 접수한 뒤 법원 직원으로부터 "이혼 의사를 최종 확인하는 절차는 3주 뒤에 있으니 그때까지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듣고 일단 집으로 돌아 왔다.
3주가 흐른 뒤 판사 앞에선 김씨.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혼자 살아갈 자신도 없네요. 아이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이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집사람이 직장생활을 이해해주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너무 쉽게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에 홧김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진짜 이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답니다." 이들 부부는 "서로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를 회복해 보겠다"며 협의이혼 신청을 취하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오랫동안 생활고를 겪었던 40대 중반의 박모(여)씨도 3주 간의 '냉각기간'을 가진 뒤 판사가 "진심으로 이혼을 원하느냐"고 묻자 아무 대답을 못했다.
박씨는 한참 뒤에야 "친정에 가서 혼자 많은 생각을 했지만 아무래도 아이들 때문에 안되겠더라"고 말했다.
'홧김에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약(藥)'이었다.
이들은 법원이 3주 동안 지정해준 '숙려기간'을 통해 마음을 돌렸다. '숙려(熟慮)'는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지금까지 시범 운영해 왔던 '이혼숙려제'를 오는 22일부터 전국 법원에서 본격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숙려기간도 더욱 길어지고 의무화됐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개정 민법에는 이혼숙려제 외에도 자녀 양육대책 제출 의무화 등 협의이혼을 까다롭게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자녀 있으면 3개월 심사숙고해야
현재 협의이혼의 경우 법원에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을 내고 재산 분할, 자녀 양육 등에 대한 협의서 등을 제출한 뒤 판사 앞에서 이혼 의사를 최종 확인하면 남남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협의서를 제출하기 전 단계에서 '숙려기간'을 갖지 않으면 협의이혼을 할 수 없다. '숙려기간'은 자녀 있는 부부는 3개월, 그렇지 않은 부부는 1개월이다.
이 절차는 과연 '홧김에 이혼'을 막는 효과가 있을까.
대법원에 따르면 2005년 3월부터 전국 54개 협의이혼 관할 법원 중 44개 법원에서 1~4주의 '숙려기간'을 시범 도입했더니 뚜렷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원지방법원에서는 2006년 5월부터 1~3주간의 숙려기간을 도입한 결과 1년간 협의이혼 취하율이 이전의 6%에서 23%로 뛰었다. 서울가정법원, 대구지법 가정지원, 부산지법 가정지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 이명철 판사는 "불륜이나 가정 폭력이 아니라 성격 차이나 경제 사정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면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이혼을 결심하게 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녀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을 하면서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쪽으로 바뀌게 된다"고 덧붙였다.
물론 가정 폭력이 문제가 되는 가정처럼 빨리 이혼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인정되면 숙려기간을 줄이거나 면제받을 수는 있다.
이에 대해 이혼 절차가 지나치게 길다는 우려와 함께 가장 사적(私的)인 영역에 법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에서는 이혼 전에 반드시 3개월~1년까지 별거기간을 갖도록 하는데 이는 우리의 숙려기간과 비슷하다.
◆외국의 입법사례 참조
오는 22일부터 또 달라지는 것은 협의이혼을 신청할 때 미성년 자녀의 양육 계획, 친권자 결정 협의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이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협의 내용에는 ▲양육자는 누구로 할 것인지 ▲양육하지 않는 쪽이 얼마씩, 어떻게 양육비를 지급할 것인지 ▲면접교섭권(양육하지 않은 쪽이 자녀와 접촉할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할 것인지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역시 프랑스 등 외국의 입법사례를 참조했다.
만약 양육권 문제를 둘러싸고 부부 간에 협의가 안 되거나 협의 내용이 자녀의 복리에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가정법원이 결정을 내린다.
아울러 이혼한 뒤 부모만 갖던 '면접교섭권'을 자녀들도 갖도록 해 같이 살지 않는 부모와 만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배우자 한쪽이 재산을 빼돌리거나 몰래 처분하면 상대방이 취소 및 원상 회복을 가정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도 새로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