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학자 권근(權近:1352~1409)은 '남행록(南行錄)'에서 "공과 환을 유배 보내니 민심이 복종하고/기와 설을 등용하니 세도가 태평해졌네(工驩流放民心服 夔契登庸世道平)"라고 읊었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따르면 공(工)과 환(驩)은 요나라 순임금 때 사흉(四凶)으로 비판받은 반면 기(夔)와 설(契)은 농사와 교육을 일으켜 존경받은 인물들이다. 민심 획득과 세도 태평의 요체가 올바른 인재 등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사에 대한 비판이 모두 공정한 것은 아니다.
실학자 유수원(柳壽垣)은 '우서(迂書)' '물의를 논함(論物議)'에서 인사 비판을 셋으로 분류했다. 유수원은 "관리의 전형(銓衡:인사)이 공정하지 못하면 민심이 신복하지 않는데, 물론(物論)이 바로 여기에서 생긴다……세 종류가 있다"라고 분류했다. '첫째는, 관직을 청탁했으나 전관(銓官:인사담당자)이 들어주지 않자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경우'이며, '둘째는 자신의 당파(黨派)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무리들로서 자기 당파를 위해 상대를 배척하려는 물의(物議)이다'라고 분류했다. 이 둘은 사감(私憾)에 의한 비난으로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수원은 셋째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사의(私意)만이 횡행(橫行)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겨 가끔 공정하지 못함을 항의하는 것이니, 이것이 공심(公心)과 공언(公言)의 물의이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소론 소속의 사간원 정언 유수원은 소론 집권기인 경종 때 소론 영의정 조태구(趙泰 )를 탄핵했다가 시련을 겪었을 정도로 국론(國論)을 당론(黨論)보다 앞세웠던 인물이었다. 현재 국정 위기의 1차적 요인이 인사 실패에 있다는 것이 중론(衆論)인데, 유수원이 분류한 첫째와 둘째에 속하는 사감 섞인 비난도 있겠지만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대다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모든 인사에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입지전(立志傳)이 있어야 박수를 받는 법이다. 자신이 번 것도 아니고 부모 유산 잔뜩 물려받은 이들이 정치권력까지 장악하는 인사를 국민들이 어찌 정권교체 시켜준 의의라고 긍정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