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국과 협상은 없다."

조지 W 부시(Bush) 미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1년, 9·11테러 직후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듬해 연두교서에서는 이란·이라크·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였다. 집권 2기 취임사에서도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의 폭정을 끝내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호기롭던 '선제공격론'은 어느새 '선제협상'으로 바뀌었고, "적과는 대화 없다"는 원칙은 '적 달래기(appeasement)' 논란에 휩싸였다.

◆시리아·북한 이어 수단과도 협상

28일 부시의 수단 특사인 리처드 S 윌리엄슨(Williamson)이 알 바시르(Bashir) 수단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수도 카르툼에 도착했다. 바시르는 지금까지 수단 서부 다르푸르의 토착 인종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면서 20여만명이 살해된 '다르푸르 학살'의 주범이자,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 지도자인 빈 라덴(Laden)을 과거에 숨겨준 인물. 과거 같으면 '협상'이 아닌 '공격'의 표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부시 행정부는 수단·시리아·북한은 물론, '앙숙'인 이란과도 이라크를 통해 간접 채널을 유지한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Obama) 상원의원의 참모 수전 라이스(Rice)는 "부시 행정부는 수년간 세계의 독재자들과 고위급 회담을 가져왔고, 자그마한 진전을 위해 커다란 양보를 하거나, 레드 카펫을 깔아주기도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선제공격 독트린에서 '선제 항복'으로?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27일 이런 변화를 놓고, "미국이 '수퍼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로 전환 중"이라고 평했다. 세상을 선악(善惡), 피아(彼我)로만 구분하고 악을 압박하면 세계 평화와 정의가 달성될 줄 알았던 '네오콘(Neocon·신보수주의)'이 퇴조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보수적인 주간지인 '위클리 스탠더드'는 '변화'의 정점에 이라크전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개전 석 달 만에 '주요 전투의 승리'가 선언되자, 독재국들은 알아서 고개 숙였다. 시리아가 CIA(미 중앙정보국)에 협조했고, 리비아는 WMD(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다.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도 '민주 선거'를 선전(宣傳)했다. 하지만 이라크가 수렁에 빠지면서, 이란이 중동의 새 패권국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 반미(反美) 분위기 속에서 '라이벌' 중국은 '화평굴기(和平掘起·평화롭게 우뚝 선다)' 전략으로 영향권을 넓혀갔다.

이 틈을 타 '악의 축' 북한·이란은 핵 프로그램 쪽으로 내달렸다. 부시 정부는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부시의 최측근으로 남은 콘돌리자 라이스(Rice) 국무장관이 '변신'을 주도했다. 과거 "클린턴 정부는 외교에 너무 집착한다"고 비판했던 그는 2005년 "이제 외교의 시간"이라며 '적과의 악수'를 물밑에서 이끌었다.

평가는 엇갈린다. 부시의 한 측근은 "(정책의) 일관성보다는 옳은 쪽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선제공격 독트린에서 '선제 항복'으로 옮겨갔다"고 푸념했다고 위클리 스탠더드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