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친구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다녀왔다. 문상객 중에는 연극배우 지망생인 여자 후배도 있었다. 이 후배는 아깝게 대입에 실패하여 재수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상을 당한 친구를 안아주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그런데 이 후배가 뒤돌아서며 한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라 며칠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것은 이 슬픔을 꼭꼭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연기할 때 마음껏 펼칠 거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대입 실패로 겪는 외로움과 슬픔 등의 모든 마음고생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아놓았다가 나중에 연기할 때 유감없이 내보일 거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수능 공부와 연기 공부 그리고 아르바이트까지 겸하느라 무척 힘들 텐데, 어린 나이에 참으로 다부진 모습이었다.
그 후배는 또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나타난 연극적 요소를 자세히 살핀다고 했다. 배우의 동작이 자연스러운지, 배우의 발음이 정확하거나 대사가 나올 타이밍이 적절한지 등 배우로서의 기질을 이미 다 갖춘 듯했다.
그녀를 보며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다. 많은 터울의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자신의 꿈을 향해 혼신을 다하는 후배의 모습에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됐다. 습작으로 비유하자면 후배의 모습은 목숨을 걸고 절명시(絶命詩)를 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인데, 나는 과연 절명시를 쓰듯 혼신을 다해 글을 쓰며 살고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엊그제 대학로의 작은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관람했었다. 관객을 압도하는 그들의 노래와 연기도 좋았지만, 그들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다 못해 목 언저리가 흥건히 젖어있는 열정이 너무나 멋있었다. 먼 훗날 무대 위에서 그와 같은 땀방울로 멋지게 꿈을 이루게 될 후배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