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수습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어제의 대국민 사과 담화를 시작으로 여권 내부의 시스템 정비, 여·야 관계의 새로운 협력 모델 추구, 향후 5년간의 국정 대강(大綱) 제시, 다각적인 국민과의 소통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한다.
열흘 후(6월 3일) 취임 100일을 맞는 새 대통령이 코트로 뛰어나가 긴급 작전타임을 부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 오늘의 정권 형편이다. 그만큼 팀 내부가 헝클어져 있고, 경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게 아닌데…'라며 혀를 차는 사람과 '거보라…'고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이 반반씩 섞여 있는 게 요즘 시정(市井)의 풍경이다.
새 대통령에겐 앞으로 5년간의 대통령 이미지를 형성할 첫 100일이 중요하다는 잣대로 재면 100일의 수지 결산은 순적자(純赤字)다. 어느 미국 대통령은 '실수는 천천히 할수록 좋은 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실패를 앞당겨 끌어다 쓴 이 대통령에게 중요한 건 실패 이후 그 실패를 받아들이는 자세다. 취임 75일 만에 쿠바 침공이란 역사에 남을 외교적 대실책(大失策)을 저질렀던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이 실패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서 얻은 뼈저린 교훈을 되새겨 훗날 그보다 몇 배 심각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이 대통령에게도 그럴 기회가 있을까.
대통령은 권력을 만들어내는 발전소다. 발전소가 고장 나면 가정집에 전력 공급이 끊긴다. 발전소가 제대로 돌아가는데도 안방 TV가 갑자기 꺼지고 냉장고의 얼음이 녹아내려 바닥이 물 범벅이 돼버릴 때가 있다. 전력을 도시로 보내는 송전탑이 망가지고 가정용으로 전압을 바꿔주는 변압기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다. 청와대 비서실과 집권당은 송전탑, 행정 각 부는 변압기에 해당한다.
지금 대통령 지지도는 20%대다. 대통령이 발전 용량의 20% 전력밖에 생산을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과 판단과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주(主) 발전소에 탈이 생기면 보조 발전소라도 돌려 부족한 전력을 보충해야 할 텐데 한집안 박근혜네나 이웃 이회창네는 자기네 발전기에 스위치를 넣을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게 척진 사이도 사이지만 만났다 하면 앙금부터 쌓이고, 원내 교섭 단체가 아니니 어쩌니 하며 청와대에 부르는 것에도 인색해 했으니 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을 앞두고 200명의 여·야 의원을 전화로 불러내고, 백악관 비서실과 내각은 의원 상대로 비준 설득 전화를 900통이나 걸어댔다.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100일 무렵 49회의 백악관 모임을 통해 467명의 여·야 의원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대통령이 싫다 해도 대통령을 들볶아서 이렇게 만드는 게 비서실과 집권당과 장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쇠고기 사태와 한·미 FTA 비준과 관련한 대통령과 여·야 의원의 만남과 통화, 비서실과 집권당과 내각의 국회 설득 실적은 공개하기도 부끄러운 정도일 것이다.
쇠고기 수입 협상 파동 이후 지금 나라는 대규모 정전(停電)사태와 흡사하다. 유언비어는 어둠을 먹고 저 혼자 살이 쪄가고, 거리의 촛불은 그걸 쥔 중·고등학생의 천진한 얼굴을 비춰 더 괴기(怪奇)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선다. 발전소에만 이상(異常)이 있는 게 아니라 송전탑과 변압기도 크게 망가진 것이다. 발전소에 기능 저하(低下)현상이 생길 때마다 헐고 새로 짓긴 힘들다. 고장 난 부분을 손질해 다시 쓰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망가진 송전탑과 변압기도 고쳐서 다시 쓰라는 건 정전사태로 고통받은 국민에 대한 결례(缺禮)다. 어차피 뜯어낼 거라면 지금 뜯는 게 낫다.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했다. 소통하려면 국민이 누구인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 근로자 평균 월급이 247만원(2008년 통계청 조사) 정도다. 360여 개 대학에 303만 명의 대학생이 재학 중이다. 그 많은 대학의 졸업생 숫자까지 합하면 2000만 명에 육박한다. 국민 중 1070만 명은 절에 다니고 860만 명은 교회에 나가고 500만 명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2005년 통계). 출신 지역에는 훨씬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다.
대통령은 이 각양각색의 국민이 인사마다 빠지지 않는 무슨 대학, 무슨 교회, 무슨 지역 출신이라는 소문과 공개된 그들의 재산 내력을 훑어보며 마음속에 무얼 쌓아 왔는가를 먼저 헤아려 봐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