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3월22일 저녁 라디오 방송에서 북한 언론인이 판문점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는 긴급뉴스를 전했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그러다) 남한에 살고 있는 누님의 성명이 '이길성'이라는 활자가 나를 사로잡았다.'

부산 연산동에 사는 김세준씨는 1969년 7월 '위장귀순' 논란을 빚고 사형당한 이수근의 외조카다. 그는 이수근이 남쪽으로 귀순한 뒤 20개월간 그의 개인비서로 함께 생활하면서 이 사건의 진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다. 김씨는 200자 원고지 942장에 육필로 적은 원고 '내 삶 속의 외삼촌―이수근 사건의 진실'을 보내왔다. 제1회 조선일보 논픽션대상에 응모한 614편 중의 하나다.

응모작 한편 한편에는 필자들이 보듬고 살아온 대한민국 현대사의 체험이 담겨있다. 통일벼 품종개발기부터 소설 형식으로 풀어쓴 대한민국 CDMA 기술개발사, 태평양 전쟁 당시 진행된 극비 작전 납코(NAPKO) 프로젝트 등이 그렇다. 일제 시대와 6·25, 1960년대 산업화 등 대한민국 현대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회고록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말단 직원에서 특급호텔 CEO까지 올라간 호텔리어가 쓴 '내가 꿈꾸는 호텔', 현직 외과의사가 쓴 어머니 암투병기, 중국에서 기업을 일궈온 어느 경영인의 체험, 해외 여행기…등 논픽션 형식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콘텐트를 아우르고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사·연구관으로 30여 년 근무한 이완주씨는 1970년대 식량자급에 결정적 계기가 됐던 '통일벼' 품종 개발의 과정을 담아 응모했다. 그는 재직 당시 동료 연구사로서 목격한 통일벼 개발과정 에피소드는 물론 작년 말부터 통일벼 개발의 주역인 허문회 서울대 명예교수와 농촌진흥청에 몸담았던 김종호 박사 등 관련자 수십 명을 인터뷰해 '얘들아, 인제 괴타리를 풀어놓자꾸나'를 썼다. '괴타리'는 허리띠의 충청도 방언으로 1973년 충남의 한 농부가 통일벼로 지은 쌀밥을 해놓고 6남매에게 실컷 먹자고 했다는 얘기에서 제목을 따왔다.

다큐멘터리 작가 이종한씨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첩보기관인 OSS(전략첩보처)와 합동으로 한반도에서 게릴라 작전을 펼쳐 일제에 타격을 주려 한 극비작전 '납코 프로젝트'를 추적했다.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발굴한 자료를 토대로 취재한 내용이다. 지난 달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들른 부시 대통령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가 바로 OSS 훈련소가 있던 곳으로, 60여 년 전 납코 프로젝트 대원들이 훈련 받던 곳이기도 하다. 10년 넘게 납코 프로젝트 취재에 매달렸다는 이 씨는 "독립운동사에서 이렇게 자랑스러운 장면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부산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 대표이사인 강용 회장은 신라호텔 말단 직원으로 출발, 특급호텔 오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내가 꿈꾸는 호텔'을 응모했다. 2006년 골드만 삭스와 함께 호텔을 인수한 뒤 노조와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 화랑과 병원, 평생교육원을 유치해 호텔을 문화공간으로 키워나가는 경영 에피소드를 담았다.

중국 랴오닝(遼寧)성에서 의류 사업을 펼치고 있는 김영룡씨는 중국에서 사업하는 기업인의 애환을 담은 '바람이 불 때에 연을 날리지 아니하고'를 응모했다. 공무원 출신으로 7년 째 랴오닝 성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중국 비즈니스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요즘, 성공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자극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 논픽션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사업기반이 어느 정도 잡혔다는 그는 작년 9월에야 1500㏄ 소형 자동차를 구입할 만큼, 사치와 거리를 둔 게 성공비결이라고 자랑했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 4선 의원을 지낸 신경식씨는 취재현장과 정계에서 체험한 비화를 담아 '의원님, 제발 산소마스크 쓰지 마세요' 로 응모했다. 중앙청과 국회를 출입하던 정치부기자에서 1973년 국회의장실 수석비서관으로 변신, 정무장관과 당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16대 의원을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물러났다. 신씨는 "글을 쓰다 보니, 지난 50년간의 언론과 정치권 생활이 광풍 속에 정신 없이 휩쓸려갔다가 튕겨져 나온 느낌이다"라고 했다.

현직 외과의사인 조백현씨는 어머니가 암을 진단 받은 날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 17개월간의 투병과정을 아들이자 의사로서 지켜본 '맨드라미 귀주떡'을 응모했다. "(스스로에게) 선생은 외과의사니까 잘 알 거야. 심각하다. 암인 것 같아. 담도가 꽉 막혀 검사용 튜브가 들어가지 않아." 어머니의 암을 확인한 그는 "나로부터 암을 통보 받은 환자나 보호자가 내 앞에서 일그러진 그 모습대로 내가 변해가고 있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