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이 저 유명한 독백을 마친 뒤 연인 오필리어를 다그친다. "신은 그대에게 하나의 얼굴을 주었소. 그런데 그대는 스스로 또 하나의 얼굴을 만드는구려." 화장한 오필리어를 탓하는 대사다. 로마 최고의 비가(悲歌) 시인 프로페르티우스도 연인 킨티아의 화장을 "꾸며낸 아름다움"이라고 불평했다. 고대 이래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화장을 속임수로 여겼다. 1770년 영국 의회는 여자가 화장으로 남자를 홀려서 하는 결혼은 인정할 수 없다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클레오파트라는 위 눈꺼풀엔 파란색 섀도를, 아래 눈꺼풀엔 녹색 공작석 가루를 발랐다. 눈썹과 눈꺼풀에 선을 그렸고 입술에 선홍색 카민 염료를 썼다. 얼굴·목·가슴엔 하얀 연백분을 칠했다. 역사를 바꾼 클레오파트라의 화장술은 유럽에 퍼져 근대까지 분(粉)에 든 납과 입술연지의 수은이 숱한 여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클레오파트라에게 빠진 안토니우스처럼 남자들이 화장한 여자들을 더 매력적으로 본다는 사실을 여러 실험으로 입증했다.
▶매릴린 먼로는 촬영장에서도 눈과 입 화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 영화사 간부들은 "아직도 분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곤 했다. 그녀는 분장실에서 짙은 눈썹, 붉은 입술, 백지처럼 하얗고 창백한 피부로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었다. 먼로는 인기절정일 때도 민얼굴로 뉴욕 술집에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요즘 하는 말을 쓰자면 '쌩얼'(생얼굴)이다.
▶매년 열리는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는 외국인의 눈을 통해 한국인의 모습을 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열린 올해 대회에선 콜롬비아 여대생의 말이 화제였다고 한다. "한국 여성은 화장을 진하게 해 쌩얼일 때는 알아보지 못하겠다" "연예인을 따라 얼굴을 고쳐 누가 누군지 모르게 다 똑같다"고도 했다.
▶이제 화장은 여중생까지 내려갔다. 10대의 화장품 구매율은 2005년 12%에서 2007년 37%로 치솟았다. 서울대 의대 2004년 조사에선 성형수술을 한 여대생이 53%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아름다움은 선(善)"이라는 단순 명제에 빠져 있다. 외모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믿음에 매달려 있다. 그 믿음 자체는 맞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성격과 통찰력, 기뻐하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에서 우러난다는 말이 공허한 세상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