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신도시’ 일산의 대표적 학원 밀집가인 후곡마을 목 좋은 곳에 ‘G1230’이라는 특목고 입시학원이 있다. 일산(7개)과 부천(2개)을 비롯, 수도권 일대에 13개의 분원을 운영 중인 꽤 유명한 학원이다. 이 학원 일산본원 영재센터와 백마캠퍼스 등 두 곳의 운영 책임자는 한 명이다. 이하정 원장, 올해 나이 서른 넷의 젊은 여성이다.
이 원장이 통솔하는 직원 수는 100여명, 원생 수는 2000여명에 이른다. 규모로만 따지면 웬만한 중소기업 수준이다. 대학(건국대 생물학과)에 다니던 1999년 아르바이트로 강사 생활을 시작, 10년도 안 돼 지금 위치에 오른 그를 지난 5월 6일 만났다. ‘이때 말곤 짬이 없다’며 그가 제시한 인터뷰 시각은 낮 12시. 점심 식사는 도넛과 커피로 대신했다. 일대 강사들 사이에서도 ‘성공모델’로 손꼽히는 그의 이야기를 통해 학원강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1년 360일 10시 출근해 새벽 2시 퇴근
이하정 원장의 원래 꿈은 변리사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엔 관심 가져본 적도 없고 소질이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동네 인근 독서실에 다녔는데 마침 아래층이 G1230의 전신이었던 글맥학원이었다. “자투리 시간에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시작했어요. 애들 가르치다 바로 올라가서 공부할 수 있으니 시간도 아낄 수 있고요.” 그러나 손쉽게 할 수 있다 여겼던 학원 일의 강도는 생각보다 훨씬 셌다.
하필 처음 맡은 반이 과학고 입시반이었던 것. “중학생이지만 엄연한 입시 준비반이니 수업만 해서 될 게 아니더라고요. 매사 달라붙어 애들 공부를 봐줘야 했고 수업 수준도 꽤 높아 저부터 공부하지 않으면 입을 뗄 수조차 없었죠. 결국 3개월 만에 독서실 짐을 빼 아예 아래층으로 내려왔어요.” (웃음)
당시 ‘초보 강사 이하정’의 일과는 혹독했다. 매일 새벽 2시까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고 오전 10시면 출근해 수업용 프린트물을 만들었다. 다른 강사와 안면이 없던 초창기 그의 학원 내 별명은 ‘전산실 직원’. 늘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의 품이 영락없는 전산 아르바이트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공부시키려면 자기부터 모범을 보여야겠단 생각에 주말과 공휴일에도 꼬박꼬박 출근했다. 2시간 동안 낑낑대며 푼 문제를 10분 만에 해치워버리는 ‘머리 좋은 제자’들을 상대하려 매일 6시간씩은 따로 짬을 내 공부에 매달렸다.
노력의 결과는 정직했다. 그는 강사 입성 첫 해였던 그 해 자신이 맡은 과학고 입시반 20여명 중 80% 이상을 원하는 학교에 진학시켰다. 입소문은 무서웠다. 다음 해 그는 학원에 개설된 과학고 대비 9개 반 수업을 도맡았다. 1년 만에 강의량이 아홉 배로 늘어난 것이다. 책임이 늘어난 만큼 두려움도 커졌다. “덜컥 겁이 났죠. 처음 몇 년간은 늘 ‘이번 시험만 끝나면 그만둬야지’ ‘이번 입시만 마치면 그만해야지’ 마음먹었어요. 그런데 이쪽 일이 좀 마약 같아요. 지금도 기억 나는 게 처음 과학올림피아드에 내보냈던 학생에게서 입상했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이에요. 그때 희열을 생각하면 도저히 일을 그만둘 수 없더라고요.”
140만원이던 월급이 10배 넘게 점프
이 원장의 강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지금이야 과학고 정원도 늘어났고 영재학교도 속속 생겨나는 추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경기 지역 과학고는 달랑 한 곳이었다. 그나마 매년 뽑는 신입생 수는 고작 69명. 그는 이런 환경에서도 한 해에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 25명을 한꺼번에 합격시키기도 했다.
결국 학원 측은 그의 지도력을 높이 사 ‘기회’를 주기로 했다. 2004년 영재센터 과장 신분이던 그를 김포 분원 원장으로 전격 발령 낸 것. ‘강사-과장-부장-원장’의 직급 체계로 움직이던 당시로선 파격적인 인사조치였다. 이 원장은 김포 분원에서 1년간 원장 수업을 받은 후 일산 못지않게 교육열 높기로 유명한 분당신도시에 신설한 분당캠퍼스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분당 쪽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학원은 그를 다시 일산본원으로 불러들여 영재센터와 백마캠퍼스 원장직을 맡겼다. 그 사이 140만원이었던 월급은 10배 이상 뛰었다.(그는 ‘대충 그쯤’이라고만 했을 뿐, 정확한 연봉 공개를 꺼렸다.)
요즘 그의 하루는 강사 시절과 다름없이 빡빡하게 굴러간다. 오전 9시 기상해 용인 죽전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되는 일과는 최소 2개 이상의 회의, 5명 내외의 강사 지원자 최종 면접, 기타 센터 운영과 관련된 업무들로 채워진다. 너무 바빠 식사는 거르기 일쑤이고 주차시간이 아까워 4㎞ 거리의 두 센터를 오갈 때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택시를 이용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퇴근 시간은 새벽 2시, 수업이 없는 일요일에도 나와 주중 정리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 짓는다. 영재학교 입시와 과학올림피아드 준비기간이 겹치는 여름엔 직접 강의를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
“강의에 몰입하면서 몰랐던 내 능력도 발견”
집과 학원 외의 다른 생활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과 탓에 아직 그는 미혼이다. 그런 그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10년간 키워낸 200여명의 든든한 제자들. 해외 명문대 등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자들은 방학 때면 귀국, 이 원장을 찾아와 후배들에게 알토란 같은 입시 정보를 내어준다. 일종의 ‘사사교육’이다. 물론 무료다. 인터넷 메신저와 휴대전화로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 귀한 해외 원서 등을 구해주는 제자들이야말로 그의 ‘재산목록 1호’다.
뜻하지 않게 강사의 길로 들어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도 가끔은 속상할 때가 있다. “학부모 중엔 ‘내 돈 주고 고용한 사람이니 원하는 건 다 해줘야 한다’는 분이 꽤 많아요. 초보 강사 시절엔 학원에 찾아와 ‘이렇게 가르쳐 되겠느냐’ ‘교재가 마음에 안 든다’며 사사건건 간섭하는 학부모 때문에 남몰래 화장실에서 울기도 많이 했죠. 그렇지만 목표가 뚜렷한 아이들을 맡아 지도하며 무언가에 몰입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저도 생각지 못한 능력을 발견했잖아요. 학교에서 근무했더라도 그런 몰입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학원의 경쟁력을 두 가지로 꼽는다. 하나는 수준이 비슷한 아이들을 최대한 잘게 쪼갠 후 가르치는 수준별 학습 체제, 다른 하나는 능력이 부족하면 견뎌낼 수 없을 만큼 혹독한 자기 계발을 요구하는 강의평가 시스템이다. “학교 선생님 중엔 학원 강사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춘 분이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분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능력을 끊임없이 평가 받아야 하는 학원과 달리 학교의 평가 체계가 느슨하기 때문 아닐까요? 저희 학원은 강사 서너 명이 팀을 꾸려 팀별로 전담 학생을 배정해 지도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집니다. 또한 분기별로 학생과 동료 강사와 상급자, 상담실 등을 통해 다면 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를 본인에게 통보하고 인사에 반영하죠. 학교도 그렇게 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