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 기준씨는 와인마니아 연기 잘하는 배우는 털털하고 촌스러워야한다고? 소주보다는 맥주, 맥주보다는 와인이 더 잘 어울리는 남자 이범수. 담배는 끊은 지 오래고, 평소에 술은 와인이나 맥주 한 두잔 정도 가볍게 즐기는 '비주류' 연예인이지만 쫑파티 등 필요할 때는 갈 때까지 갈 줄도 안다. 송승헌, 권상우, 이병헌, 신하균, 한석규 등이 간혹 함께 뭉치는 술 동지들이다.  <정재근 기자 scblog.chosun.com

 ★첫잔: "장기준 역이 이성재씨한테 먼저 갔었다구요?."

투명한 글라스에 검붉은 와인을 반쯤 채웠다.

 -"장기준 역이 이성재에게 먼저 갔었다는 얘기가 사실이에요?"

▶"그래요? '외과의사 봉달희'가 끝나고 5월쯤 연락이 왔어요. 기획단계인데 같이 하자더군요. 종영 직후라 일단은 고사를 했는데, 두달도 안돼 또 연락이 왔어요. 추석쯤 4회분 대본을 봤는데 남주기 아깝다 작심했죠." 기획단계부터 제작진과 교감했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셈이다. 당연 캐스팅 비화도 줄줄이 꿴다. "승아 역의 경우, 김희선씨에게도 제안이 들어갔는데 결혼 생활 때문에 당분간 연기활동을 안하고 싶다고 했다더군요. 제일 처음 캐스팅이 확정됐으니 박용하가 연기한 PD 역을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과 겹치는 면이 있는 것 같아 장기준 쪽을 골랐어요. 카리스마도 있고, 감싸주는 부드러움도 있구요. 희생하는 모습, 난관을 헤쳐나가는 모습. 낙천적 사고와 유머를 두루 갖춘 복합적인 캐릭터라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주인공이 네 명이라 단점도 있겠다.

▶"좋은 점이 더 많아요. '외과의사 봉달희' 때는 하루 2시간 잤는데, 지금은 4시간은 자요. 촬영 기간은 온에어가 더 힘들지만…."(웃음) '온에어'를 통해 '외과의사 봉달희' 때 보다 한층 뜨거워진 인기를 실감중이다. 얼마전 SBS 탄현 세트장으로 10대부터 40대까지 130여명의 여성 팬들이 찾아와줘 깜짝 놀랐단다.

 ★두번째 잔: "오승아가 싸가지라구요? 배우라면 오히려 그래야하는 거 아닌가."

-일에 관한한 철두철미한 스타일이다보니 스태프와 일로 부딪친 적이 있다는 얘기도 들어본 것 같다. 일과 관련해 자기 고집이 강한 왕싸가지 오승아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배우라는 동물이 욕심이 많고 샘이 많아야 잘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주목받고 싶지 않고, 박수 받고 싶지 않은 배우가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요. 제가 믿지 않는 말 중 하나가 '나는 괜찮으니까 다른 배우들 돋보이게 해주세요'라는 말이에요. 욕심이 부끄러운 건 아니잖아요."

촬영장 분위기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작품이 친목도모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해 만난 것이라는 신조. 서로 누가 되지 않도록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하고, 배우는 이름값을 다하기 위해 매진해야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선의의 경쟁을 즐기는 편인가.

▶"대학교 2학년 때 4학년 형과 주인공을 다투기도 했었는데, 보이지 않는 경쟁을 좋아해요. 하지만 결과에 치중하지는 않죠. 늘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고 저를 채찍질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연기하는 매 순간을 즐기는 낙천적인 성격인 것 같아요."

 ★세번째 잔: "아직까지 왜 혼자냐구요? 글쎄요…."

향긋한 와인 내음에 볼도 발그레 달아올랐겠다, 본격적으로 이 매력남의 연애지사를 파헤쳐야겠다. 잘 알려져 있듯 돌싱. 2004년부터 지금까지 혼자다. 누구와의 열애설이나 스캔들 루머가 몇번은 나도 났을 법한데 없었다.

 -관리를 잘한 거예요, 정말 없으신 거예요?

▶"마음은 있죠. 하지만 기획하고 의도한 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서두를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저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분이면 좋겠어요. 제가 동적이면 상대는 정적이고, 제가 뜨겁다면 상대는 차가운…."

그런데 동선이나 환경을 따져보면 여자에 무관심한 쪽이 맞는 것 같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부모님과 함께 셋이 살고 있다니 작업남의 기본(?)조차 망각한 듯하다.

 -18년간 35편의 영화, 2개의 드라마를 찍었다. 연애할 물리적 시간 자체가 안 나오는 건 아닌가.

▶"(머리를 긁적이며) 워커홀릭은 아닌데, (고개를 끄덕이며) 네. 이렇게 혼자가 된 것도 따지고보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해요."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 여고생 팬들을 몰고 다녔다. 4학년 땐 1학년 예쁜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고소영, 염정아 등도 그를 따랐던 후배 그룹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대시하는 여자도, 다가오는 여자도 없었다. 연기에만 올인한 듯한 그에게 누구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는 얘기는 뒤늦게 들었다. "세상을 잘못 살았다"며 탄식한다.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지금도 비슷할 것 같은데.

▶"잘나서도 아니고. 자존심이 세서도 아니고. 거절당할까봐 겁나요.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잔: "인기는 스쳐지나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잠깐의 스침에도 의미를 주고 싶어요."

'외과의사 봉달희'에 이어 '온에어'(SBS)까지 대박이다. 영화 '음란서생'과 '오! 브라더스'도 잇따라 250만, 350만명의 흥행 신화를 일궈낸 터라 말그대로 안방극장과 스크린 양쪽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떠올랐다.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치솟는 순간이다.

 -통상 많은 스타들이 긴 휴식기를 갖는데, 범수씨는 공포스릴러 영화 '고사'를 신속하게 골랐네요. 이유라도?

▶"쫑파티 끝나자마자 사흘 쉬고 크랭크업해요.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편이에요. 작품 한 편을 할 때마다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안가고 싶었던 곳일 수도 있고, 가고 싶을만큼 좋았던 곳일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떤 여행이든 좋잖아요. 준비 잘하고, 가서도 잘 즐기면 되죠."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 같다.

▶"(인기는) 덧없는 것이죠. 재미난 드라마는 또 나올 거고. 또 다른 배우들이 사랑받을 거고. 몇달이고, 몇년이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다는 데 의미를 주고 싶어요. 순간의 인기를 여러번, 수십번 되풀이할 수 있도록, 박수받을 수 있도록 계속 열심히 해야죠."

천상 배우, 천직이 배우 같다. 반쯤은 워커홀릭 증세를 보이는 이 남자, 그동안 살면서 가장 행복감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을 지 문득 궁금해졌다."평범한 어느날이었어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고 일어나 어슬렁 슬리퍼 끌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나가는데, 아 행복하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지금은 휴식을 즐기고 있다는 뿌듯함이 몰려오더라구요."

 ★남은 한 모금!

술 먹는 자리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업계에선 그를 '비주류 연예인'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그런 그가 새벽까지 퍼마시는 날이 있으니 바로 쫑파티 자리다.

"축제라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한 데 대해 신나게 자축하는 자리잖아요. 이날만큼은 2차고 3차고 마지막 한 사람이 가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싶어져요. 주량은 그다지 세지 않다 보니 나름대로 끝까지 버티는 요령을 갖고 있죠. 하하"

'온에어'의 쫑파티는 16일. 쑥스럽기도 하고 지금 아니면 영원히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 술김에 스포츠조선의 지면을 빌어 동료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단다.

"작품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그동안 사적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요. (박)용하는 어차피 대학 후배라 계속 봐야할 것 같고…. '온에어'와 함께 한 시간. 정말로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한번도 표현하지 못했는데, 박용하, 김하늘, 송윤아…. 좋은 배우들 만나 즐겁고 기쁜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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